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운장 Jan 20. 2020

커피를 끊었더니..

15년간 즐거웠다

소설가 장강명이 40년 만에 자신이 유당불내증인 줄 알고 유제품을 멀리하게 되어 삶의 질을 높였다는 칼럼을 봤다. 그전까지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과민성 대장증후군으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거 정말 인간의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황폐하게 만드는 끔찍한 질병이다. 외출할 때 늘 휴지를 챙기고, 주변에 깨끗한 화장실이 어디인지 늘 파악하고, 어지간하면 고속버스보다는 기차를 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에 한두 번은 울상이 되어 공중화장실을 찾아 헤매는 고비에 빠진다. 집에서 안전하게 용무를 해결할 때도 전반적인 프로세스가 시원하고 상쾌하다기보다는 우중충하고 찜찜한 분위기다.


그런데 변산반도에 머무는 동안에는 체질이 싹 바뀐 것처럼 그런 고초를 전혀 겪지 않았다. 처음에는 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푸드를 먹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랬다가 볼 일을 보러 하루 서울에 왔던 날 크림소스 파스타를 먹은 뒤 곤경에 빠지고는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우유가 문제였구나! 나는 유당불내증 환자였던 것이다.


장강명 <행복을 정확하게 추구할 권리> 한국일보, 2017.6.22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06221014225195



장강명의 칼럼을 보고 아침에 라테나 두유 계란 등 특정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안되어 하루 종일 기분을 망치는 일이 있음이 떠올랐다.

마시고 싶다..

 점점 쇠퇴해가는 소화 기관 때문인 걸까. 이후 아침에 내 몸이 불쾌해하는 음식을 넣지 않기로 하고 전날 밤 8시부터 다음날 12시 30분까지는 요구르트와 견과류, 아이스커피만 먹는 간헐적 단식의 길로 접어들었다.

마시고 싶다..

 아침을 과하게 먹으면 나는 두뇌 활동이 잘 되지 않았다. 무겁게 무언가를 먹으면 아침의 맑고 가볍고 순수한 기분이 더럽혀짐을 자주 느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지 말자.

그중 하나는 커피였다. 나는 남들보다 카페인에 민감했다. 


주말이 되면 멍하게 지내는 이유는 카페인 때문이었다. 번아웃의 주범이다. 추측컨대, 몸에 있는 에너지가 100이라면 카페인은 순간적으로 그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물질 같다. 그래서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게 되어 주말이 되면 소파에 축 늘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시고 싶다...

카페인이 정말 몹쓸 녀석임을 느낀 건 편의점에서 먹은 커피 이후였다. 가장 에너지가 없는 금요일 오후 나는 가장 일이 많았다.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마셨는데 정신이 맑아지기는 커녕 극심한 두통과 소화 불량이 몰려왔다. 카페인과 우유의 연합군은 내 몸에 폭탄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내가 구입한 커피는 총 카페인 함량이 230mg이었다. 성인의 최대 카페인 권장량 400mg의 절반이나 그 작은 커피에 들어 있었다.


퇴근 후 소파에 누워서 두통과 메스꺼움과 피로감을 한꺼번에 느꼈다. 그런데 카페인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커피에 무언가 있는 걸까? 성인이 되어 습관적으로 마시던 커피를 이참에 실험 삼아 끊어보자. 


물론 끊기는 쉽지 않았다

커피 대신 요구르트를 먹고 둥굴레차와 결명자차 메밀차를 아침에 번갈아가면서 마셨다. 무언가의 대용품이 확실히 필요했다. 금단 현상은 심했다. 모든 금단 현상들의 공통점인 짜증과 불안이 몰려왔다. 하지만 금연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해결해줬다. 


커피를 끊었더니

1. 밤에 잠이 더 잘 왔고, 아침에 기분 좋게 깰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좋은 기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2. 번아웃이 없어졌다. 주말과 평일의 에너지 차이가 없다.

3. 사람과의 대화에서 공격성이 적어졌다. 나는 영업을 하는 사람인데 이전에는 대화하는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자극을 많이 받아서 맞받아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그걸 큰 자극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4. 극단성이 줄어들었다.

마시고 싶다..

나는 카페인의 아주 HIGH 하게 만드는 기분에 중독되었던 것이다. 카페인은 내 심장을 빨리 뛰게 만들었고 나는 어떤 일이든 우당탕탕 가장 빠른 속도로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인생은 마라톤. 100미터 달리기처럼 전속력으로 달렸다간 멀리 가지 못한다.


묵묵하게

이전보다 덤덤하고 침착하게 무언가를 하고 있다. 지금 이글도 묵묵하게 쓰고 있다. 카페인을 마셨다면 내 기분에 취해 뭔가를 싸지르는 기분으로 타이핑을 쳤을 텐데. 그러면 오래 못쓴다.

지금 커피를 마시면 미래의 에너지를 끌어다 쓰는 것이다. 

마시고 싶다..

15년간 즐겼던 커피여 안녕. 

넌 나랑 맞지 않는 물질이었어.


(마시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