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의 지리학>(오월의봄, 2024)를 읽고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환상
2000년대부터 기후 위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친환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친환경'은 유행"(120쪽)이 되었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앞다투어 '지속가능한 발전'을 홍보했다. 광고 속에서, 홈페이지 화면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소비자들은 전기차를 탐으로써, 그들이 만든 텀블러를 씀으로써, 에코 퍼(eco-fur)로 만든 옷을 입음으로써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방법이 아니라 그린 워싱(기업이 경제적 이윤을 목적으로 친환경적 특성을 허위 과장하여 광고·홍보·포장하는 행위(FS 이노베이션))에서 나온 그릇된 믿음이다. 북반구의 부유한 국가들이 내세우는 탄소 배출 감축은 사실상 탄소 배출을 외주화함으로써 얻어낸 눈속임이다. 이를 저자는 '탄소 식민주의'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의 원인은 부의 창출에 관련된 환경 비용을 부를 축적하는 곳과 동떨어진 타지에서 지불하는 체계에 있다. 그 체계를 이 책에서는 탄소 식민주의라고 부른다.
21쪽
저자는 이런 탄소 식민주의와 그린 워싱이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 직접 보고 들은 사례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캄보디아의 벽돌 가마가 대표적인 예이다. 저자에 따르면 "벽돌은 지속가능성과 관련해 중요한 것을 시사한다."(136쪽) 벽돌은 도시화를 상징한다. 벽돌로 건물을 짓기 때문이다. 하지만 벽돌 가마는 글로벌 블랙 카본(화석연료가 불완전 연소할 때 먼지나 분진, 검은 그을음 등 고형 입자의 형태로 배출되는 탄소, 136쪽)의 20퍼센트를 배출하고, 선진국에서 수출한 폐의류를 땔감으로 하기 때문에 현지인의 건강과 자연환경에 치명적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벽돌의 이런 영향을 알아채기 어렵다. 세계화로 공급망이 너무나 복잡해져버렸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결국 이러한 글로벌 공급망에 의해 은폐된 환상일 뿐이다.
개인의 소비 변화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
저자가 탄소 식민주의와 함께 책의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개개인의 소비 패턴 변화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노력이 헛되다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소비를 통해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진정한 해결책을 보지 못하게 한다.
소비자의 힘이 글로벌 경제를 더욱 윤리적이거나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93쪽
또한 '지구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집'이라는 생각 하의 소규모 집단행동도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역설한다.
소규모의 집단행동을 전 지구적으로 집결시키는 것이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핵심이라는 발상이야말로 사실상 기후붕괴 대한 효과적인 조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일 것이다.
123쪽
그렇다면 지금의 이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바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에게 공급망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벽돌, 또는 의류를 만드는 제3세계의 공장들의 노동자에 입장에서의 환경문제를 생각하도록 기업과 국가를 압박하는 일. 그것이 바로 지금의 기후 위기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일이다. 저자가 예시로 든 캄보디아의 '숲의 정령'처럼 탄소 식민주의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정치적으로 힘을 얻어야 기후 붕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세계에서 환경 정의는 곧 경제 정의이다. 더 평등한 세계는 기후 붕괴와 맞서 싸우는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무기이다.
182쪽
전 지구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기후 위기는 자연의 문제가 아니다. 인공적 문제이며, 더 나아가 지구적 불평등에서 야기되는 문제이다. 투발루의 가라앉는 섬, 캄보디아의 예측을 넘어서는 강우 등은 탄소 배출을 외주화하는 북반구의 부유한 나라들, 메콩강에 수용 가능하지 않은 개수의 댐을 만드는 중국,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의 이익 다툼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규정하는 요인은 환경 자체가 아니라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의 유무"(287쪽)이며 이는 전적으로 경제적 평등에 달려있다.
얼마 전 친환경, 로컬을 표방하는 모 브랜드에서 테트라팩에 물을 담아 파는 것을 보았다. 테트라팩 겉면에는 '플라스틱 제로'를 표방한다는 문구가 적혀져있다. 테트라팩이 기존의 페트병보다 친환경적인가? 테트라팩의 재활용률이 13%*인 반면 페트병 재활용률** 20%가 넘는다. 결국 이 역시 그린워싱의 일부인 것이다.
이처럼 <재앙의 지리학>은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반대에 있는 부유한 국가들을 오가며 기후 붕괴의 원인에 대한 감춰져 있던 경제적 진실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동안 '환경 보호'라는 명분 하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텀블러 사용하기, 장바구니 들기, 물 아껴 쓰기 등등 보다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활동 등,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기후 위기에 대해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