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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me : 틀에 넣다, 누명을 씌우다

<세상을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북하우스, 2024) 문장 모음

by 고목나무와 매미

이동진 평론가가 추천한 책으로 유명해진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 인도계 영국인이자 박물관학자인 수비드라 다스가 비백인의 입장에서 본 백인 중심의 브랜드에 대해 신랄하게 이야기한 책이다.

책의 제목에는 '프레임'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프레임은 보통 '액자, 틀'이라는 명사로 쓰이지만 '누명을 씌우다, 틀에 넣다'의 동사로 쓰이는 경우도 많다. 뉴스를 보거나 법률 드라마를 보면 이 단어가 동사로 쓰이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브랜드, 수단, 시스템 등 여러 가지 대체 단어를 넣을 수 있었겠지만 저자가 굳이 '프레임'이라는 낱말을 선택한 건 저자가 소개한 법, 예술, 과학, 교육 등 10가지가 전 세계 사람들의 사고를 백인들이 의도한 '문명'이라는 틀에 끼워 넣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적으로 프레임에 갇힌 독자로 읽으면서 이마를 탁 치게 했던 문장들을 정리한다.


매콜리에 따르면 "우리와 우리가 통치하는 수많은 사람 사이를 중개해 줄 중간 계급, 그러니까 혈통과 피부색은 인도인이지만, 취향과 의견, 또 도덕이나 지성 측면에서는 영국인과 같은 계급"이 필요했다.

71쪽


작년에 감명 깊게 읽었던 <마이너 필링스>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백인과 흑인/히스패닉계 사이에서 중간 계급으로서 역할을 할 때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아시아인들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차별이 없어져야만 사라지는 계급이 아닐까.

문화는 싸움에서 이기고 깃발을 꽂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의 한 형태다. 그러니 식민지가 되는 것은 단순히 땅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정신도 식민지가 되는 것이다.

79쪽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물리적인 폭압과 동시에 많은 공을 기울인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이는 다른 모든 제국주의처럼 과거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콘텐츠들이 붐을 일으키기 전에 우리는 미국 또는 일본의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은 우리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품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문화가 가진 가장 무서운 힘이다.

서양인들이 드리밍(어보리진이 호주의 자연을 관리하던 전통적인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문명화된 사람들과 비교해서 야만인들이 할 수 있는 일에 관한 이들의 관념이 너무 제한적이었는지라, 이 틀을 넘어서서 주변을 둘러싼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21쪽


르시시즘이 얼마나 사람들을 편협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이게 집단 단위로 이루어졌을 때 환경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준 문장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람이 되어라. 그렇지만 공동체와 주변 사람들이라는 맥락 속에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

376쪽


현대인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 그 유명한 매슬로의 욕구 6단계가 사실은 자기 계발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다는 걸 누가 알고 있었을까.

나 자신이 되는 것도 중요하고, 내가 나로서 인정받고 성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졌을 때이다. 남한테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나 자신이 되면, 종국엔 사회에서 고립된 나만 남는다.


앞서 고백했듯이 성공적으로 '문명화'된 독자로서 초반부는 읽기가 힘들었다. 과학, 교육, 문자 누가 들어도 현대사회의 기반이 되는 요소들이 사실은 백인들이 자신들의 편견과 통치를 위해 만들어 낸 도구들이라는 걸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저자의 구체적인 예시-3차원적인 문자인 잉카의 '키푸', 아이티의 '좀비'-들은 점점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게 만들었다. 왜 이동진 평론가가 추천했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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