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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더 극적인

<콜디츠>(열린책들, 2025)를 읽고

by 고목나무와 매미

[컬처블룸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콜디츠 '포로수용소'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를 떠올리면 아우슈비츠, 다하우 등의 강제 수용소가 먼저 떠오른다. "<노동을 통한 말살> 정책을 무자비하게 적용"(420쪽)한 강제 수용소들에 비해 독일군에 의해 운영된 포로수용소는 포로가 있었던 국가 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독일의 콜디츠 성을 개조한 콜디츠 포로수용소는 1939년부터 전쟁이 끝나는 1945년까지 "독일에 비우호적"인 "장교급 포로들의 수용소"(31쪽)였다. <콜디츠>(열린책들, 2025)는 이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포로들의 자유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다루고 있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실화

<콜디츠>를 읽는 내내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포로들의 탈출 노력,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소설보다 더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포로들은 수용소를 벗어나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생각해 냈다. 굴 파기, 변장은 예삿일이고 종국에는 날아서 탈출하기 위한 글라이더까지 만들었다.


콜디츠 글라이더는 독창성이 낳은 역작이었다. 수평적 사고, 창의성, 집단적인 노력이 한데 어우러져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냈다. (중략) 어이가 없을 정도로 야심 찬 이 계획이 사람들에게 할 일과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서 그들이 잠시 굶주림을 잊고 새로이 응집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370쪽


포로들이 독일군에 대항하는 방법 역시 드라마틱 했다. 독일군들을 귀찮게 하거나 폭발하기 직전까지 조롱하는 '얼간이 괴롭히기'부터 마을 사람들을 포섭하여 정보망을 구축하여 장래에 대비하는 것까지 제한된 물자만으로는 생각해 내기 어려운 방법들로 나름의 전쟁을 했다.


콜디츠 성에는 다양한 군상의 인간이 있었고 여러 영웅적인 행보를 보인 사람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스위스 관리, 루돌프 덴츨러였다. 덴츨러는 독일군들이 제네바 협약에 따르지 않는 경우를 면밀히 조사하여 여러 번 그들을 구출해냈다. 죽을 위험에 처한 미국인 포로들을 구했으며 히틀러가 최후의 발악으로 더 가치가 있는 포로들을 숨기려고 할 때 끝까지 이를 쫓아갔다.


<그런데 차가 밖으로 나가던 중 어느 키오스크 뒤에 친숙한 인물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 부였다. (중략) 우리가 출발하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다. 생명선이 아직 이어져 있었다.> 루돌프 덴츨러는 이 수송대의 뒤에 따라붙었다.

437쪽


덴츨러는 이 포로들을 포기하지 않았고 기지를 발휘하여 모두를 안전하게 구출했다. 하지만 그는 "전쟁 중의 업적을 한 번도 인정받지 못했고, 본인이 인정받고자 하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분쟁 중에 자신이 숭상하는 규칙을 지켜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466쪽)했을 뿐이었다.


포로수용소를 통해 생각해 보는 삶

콜디츠 포로수용소는 하나의 작은 사회였다. 초반에는 작은 유럽이었고 후반으로 갈수록 작은 영국이 되었다. 모두가 국가를 위해 싸우다 포로가 되었지만 그들은 서로를 동등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장교들은 당번병들을 업신여겼으며 사립학교 출신들은 각자의 무리를 만들어 배타적으로 행동했다. 끝까지 나치에 협조하지 않은 인도 출신 영국 장교 비렌드라나트 마줌드라는 포로수용소에 있는 동안 멸칭으로 불렸으며 탈출하고 나서도 그 업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제대 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영국의 계급과 인종차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또한 자유를 빼앗겨 절망에 빠진 포로들을 통해 인간의 정신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감금되어 있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포로들은 여러 정신적인 문제를 겪었다. 우울, 무기력감을 넘어 성 도착증까지 생겼다. 갇혀 있는 상태, 보이지 않는 전쟁의 끝에서 온 절망도 있었지만 때때로 희망도 그들에게는 문제가 되었다.


소수의 사람들이 마침내 선을 넘어 정신을 놓은 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 때문이었다.

368쪽


<콜디츠>는 포로수용소에 대해 알려줄 뿐만 아니라 밑바닥에서의 인간 군상, 인간의 심리 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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