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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한인들의 삶

<슬픔의 틈새>(사계절, 2025)을 읽고

by 고목나무와 매미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쓴 글입니다.]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마지막 권

디아스포라. '흩어진 사람들이란 뜻으로, 팔레스타인을 떠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던 유대인을 이르던 말'(표준국어대사전). 하지만 이제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전쟁, 정치적 갈등 등의 이유로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이금이 작가는 일제의 폭압으로 고향을 떠났지만 꿋꿋하게 삶을 이어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렸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2016, 사계절)는 일제강점기 조선을, <알로하, 나의 엄마들>(창비, 2020)은 하와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슬픔의 틈새>(사계절 2025)는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사할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할린 한인 1세대의 슬픔과 기쁨

사할린으로 이주한 1세대 한인들의 삶은 그야말로 한(恨)으로 점철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게 착취당했다. 일본인 근무자에 비해 월급도 적게 받았고 일하던 탄광에서 사고가 나도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다. 탄광에서 조선 노동자가 당했던 착취는 사고로 죽은 태술의 편지에 잘 드러나 있다.



엄니, 이곳은 지옥이나 다름없어요. 왜놈들은 조선 사람들 목숨을 모기만치도 안 여겨요. 탄광 앞에 죽은 사람들 시, 시체가 거, 거름 더미처럼 쌓여 있어요.
82쪽


일제강점기가 끝나자 이번에는 무국적자의 설움이 밀려왔다. 일본, 러시아, 조선 정부는 사할린에 남은 한인들을 서로의 책임으로 미뤘다. 한국 정부는 사할린에 남은 한인들을 외국인으로 간주했다. 일본이 귀환선을 보내 자국민을 태워가는 중에도 한국 정부는 한인들을 모르는 척했다. 소련은 소련 국적을 취득하게 할 목적으로 무국적자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


무국적자에 대한 제재는 훨씬 심했다. 무국적자들은 허가 없이 사할린을 벗어날 수 없을뿐더러 섬 안에서도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중략) 한인들 대다수는 온갖 손해를 감수하며 버텼다.
224쪽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야 사할린 한인들은 한국에 왕래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90년대가 되어서야 영주 귀국 사업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영주 귀국 사업 역시 사할린 한인들에게는 시련으로 다가왔다. 한국을 고향으로 생각하는 한인 1세대와 러시아를 고향으로 생각하는 2세대, 3세대 사이의 세대 갈등을 만들었다.


한과 고난으로 가득한 사할린 한인들의 삶이었지만 슬픔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단옥은 가족들과의 일상에서 행복을 느꼈다. 무국적자가 되었을 때도 자매나 다름없는 유키에, 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은 단옥에게 즐거운 기억을 만들었다. 결혼 후에도 단옥은 직장에서 차별받았지만 가족들에게서부터 위안을 받았다.


행복한 기억은 언제나 이렇게 사소한 일상에서 얻어졌다. 단옥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행복한 추억도 그런 것들이었다.
267쪽


슬픔의 틈새

이금이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제목에 대해 간략히 적었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의 유명한 작가 안톤 체호프는 1890년에 사할린을 방문했다. 사할린에 대해 쓴 기행문에서 체호프는 사할린 섬을 '슬픈 틈새의 땅'으로 표현했다. 작가는 여기서 제목을 차용했다. 책의 제목이 <슬픔의 틈새>가 된 까닭은 단옥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앞으로는 사할린 한인들의 삶을 전할 때 우리가 모진 운명 속에서도 사람다움을 잃지 않고, 슬픔의 틈새에서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찾아내고자 애쓰며 살았다는 것 또한 함께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소.
436쪽


사할린 한인들의 삶은 고난과 역경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안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살아냈으며 사람들 간의 유대를 통해 공동체를 이어갔다. 그들의 삶에는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희망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고 행복이 있었다. <슬픔의 틈새>는 그 시대를 살아나갔던 사할린 한인들의 삶을 알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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