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아빠 사랑
이번 여행은 엄마의 환갑 기념이었다. 친구랑 통화를 하다가 엄마의 61번째 생일 기념으로 가족 여행을 간다고 했더니 친구가 물었다.
"엄마 생신이니까 엄마가 원하시는 곳으로 여행 가는 거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답은 "아니"였다. 엄마는 이미 2015년 겨울에 스페인에 다녀왔다. 스페인은 '같은 곳은 2번 가지 않는다'는 엄마의 여행 신념에 반하는 장소였다. 그렇다면 엄마는 왜 스페인을 선택했을까? 아빠가 스페인을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 생신임에도 당신이 가고 싶은 곳보다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은 목적지를 선택한 것이다. 엄마의 아빠 사랑은 스페인 내 도시 선택에도 계속 이어졌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토를라-오르데사Torla-Ordesa가 좋은 예이다. 도시보다는 광활한 자연을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엄마는 시간을 쪼개어 피레네산맥 하이킹 일정을 넣었다.
토를라-오르데사는 우에스카Huesca 지역의 작은 마을로 오르데사 이 몬테 페르디도Ordesa y Monte Perdido 국립공원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한다. 여름에 오르데사 계곡으로 하이킹을 가려면 이 작은 마을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취켓팅에 성공한 호텔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을 먹는데 호텔 방 밖으로 오르데사 계곡의 절벽이 보인다.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트레킹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갔다. 이른 시간임에도 버스를 타려고 대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유명한 관광지인 말꼬리 폭포Cascada de la Cola de Caballo까지는 왕복 5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하여 중간중간에 먹을 간식과 점심까지 가방 무겁게 챙겨 출발했다.
산속이라 그런지 하이킹을 막 시작했을 때는 아직 계곡이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안갯속에 숨어 있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말꼬리 폭포로 올라가는 길은 제법 가파르다. 덕분에 곳곳에서 폭포를 볼 수 있다. 말꼬리 폭포에 도착하기 전에 다른 폭포 2개를 볼 수 있는데 한 폭포는 인공적으로 만든 계단에서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자연이 만든 정교하고 정확한 계단식 구조물이 신기했다.
가파른 길을 가다 보니 배가 고팠다. 계곡 옆 쉴 만한 곳을 찾아 돗자리를 펴고 준비해 간 음식을 먹었다. 하이킹 중에는 역시 컵라면이지. 컵라면, 주먹밥 등을 배부르게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점심을 먹고도 2-30분을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야 했다. '중간에 돌아갈까' 싶은 생각이 들 때쯤 평지가 나타났다. 산속에 이렇게 넓은 평지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평탄한 길을 다시 40여 분 가니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말꼬리 폭포에 도착했다. 말꼬리 폭포는 물이 내려오는 모습이 말꼬리의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말꼬리 폭포 아래에 작은 호수가 있어 우리도 발을 담갔다.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니 올라오면서 생긴 발의 피로가 좀 풀리는 느낌이었다.
올라갈 때 힘을 다 써서 그런지 내려올 때는 사진 찍을 힘조차 없었다. 에너지도 다 방전되고 갈 길이 멀어 발걸음을 재촉해서 내려왔다. 다시 버스 타러 내려왔을 때에는 저절로 박수가 나올 정도였다.
약 6시간의 하이킹을 마치고 바로 차를 몰아 다음 도시로 향했다. 하이킹 코스가 험해서 그런지 뒷자리 부모님은 차에 타자마자 깊은 잠에 빠지셨다. 동생과 내가 앞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말해도 산 세바스티안으로 가는 동안 한 번도 깨지 않으셨다.
엄마는 사실 하이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작년에 아빠가 암에 걸리신 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식사도 잘 못하시고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6시간이 걸리는 하이킹 코스를 여행 일정에 넣었다는 건 엄마가 얼마나 아빠의 취향을 고려했는지를 보여준다. 역시나 아빠는 모두가 헥헥 거릴 때도 마치 계곡에 사는 산양처럼 날아다니셨고 스페인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경험도 하이킹이었다. 자주 투닥거려도 이럴 때 보면 엄마가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엄마, 아빠 좀 그만 사랑해.
제이 가족의 여행 팁
1. 여름 성수기에는 토를라-오르데사 마을에서 버스를 타야 계곡으로 올라갈 수 있다. 웬만하면 토를라-오르데사 마을의 숙소를 예약하는 것을 추천한다.
2. 성수기기 때문에 예약이 어려운데 예약 사이트를 자주 들여다보면 취소되는 방이 나오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우리도 무료 취소가 가능한 인근 호텔을 예약해두고 1달 전 쯤 취소된 방을 발견하여 다시 예약했다.
3. 오르데사 계곡은 트레킹이 아니라 하이킹이다. 6-7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다녀오는 것이 좋다.
4. 버스 정류장을 제외하고 오르데사 계곡 하이킹 중에는 화장실도, 쓰레기통도 없으니 이를 감안해서 짐을 챙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