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엔 까미노 Buen Camino
스페인은 유명한 관광지기도 하지만 유명한 순례지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러 오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다양한 시작점에서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으로 향한다. 버킷 리스트 실현, 인생의 의미 고찰 등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
가족여행에서는 서로 오랜 시간동안 붙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힘들다. 부모님이 나이가 드신 이후로는 더 떨어져 있기가 어렵다. 자리를 뜬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도 되고 부모님도 점점 더 우리에게 의존하시기 때문이다. 가끔은 순례길처럼 오롯이 혼자 생각할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기도 하다.
이번 여행에서 산티아고 순례길 일부를 돌아볼 수 있었다. 로그로뇨Logrono 근처의 그랴뇽Granon과 엘시에고Elciego였다. 로그로뇨는 리오하 지방La Rioja의 주도로 산티아고 순례길 중 큰 도시에 속한다.
와인으로 유명한 리오하의 주도인 만큼 와인에 곁들여 먹을 수 있는 타파스도 발달했다. 타파스 집이 밀집해 있는 라우렐 거리에서는 타파스 투어가 가능하다.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집은 양송이 버섯(샹피뇽Champinones)으로 유명한 바 앙헬Bar Angel이다. 사람이 몰릴 때 주문은 거의 전쟁터와 마찬가지다. 직원이 올 때까지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는데 직원과 끊임없이 눈을 맞춰야 주문을 받는다. 술 4잔과 샹피뇽을 시키면 또 먹을 자리를 찾아 매의 눈으로 가게를 훑어야 한다. 약 30분 만에 샹피뇽을 먹을 수 있었는데 올리브유, 마늘만으로도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전쟁을 치르듯이 샹피뇽을 먹고 로그로뇨 시내로 나오면 곳곳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뜻하는 조개껍데기를 볼 수 있다. 우리도 피에드로 다리를 건너 로그로뇨 도시를 관통하는 순례길을 걸어봤다. 순례길을 따라 있는 알베르게와 도심 한가운데보다 고즈넉한 분위기 덕분에 순례객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로그로뇨 순례길의 가장 독특한 점은 순례객들에게 와인을 무료로 주는 와이너리다. 와인의 고장다웠다.
그라뇽은 순례길이 지나가는 작은 마을이다. 가운데 광장과 성당 및 알베르게가 있고 10m 정도의 좁은 길이 마을 가운데를 지난다.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순례길이 시작되는데 끝없이 펼쳐진 밀밭이 인상적이다. 그라뇽에서 순례하는 사람들을 몇 명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몸집만 한 배낭을 짊어지고 묵묵히 걷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무사히 순례를 마치길 바라는 마음에서 순례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에게 행운을 빌어주었다. "Buen Camino."
우리도 30분 정도 순례객 느낌으로 걸어 다녀왔다. 물리적으로는 함께 걸었지만 각각 명상하듯이 대화를 나누지 않고 걸었던 길은 거의 24시간 붙어있었던 우리에게 잠깐의 개인적 시간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엘 시에고였다. 엘 시에고는 여러 와이너리가 모여있는 곳인데, 그중에서 마르케스 데 리스칼이 가장 유명하다. 유명한 이유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프랑크 게리가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다.
곡선의 지붕은 구겐하임 미술관과 비슷하지만 와이너리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지붕에 보라색을 얹었다. 지붕의 곡선을 완만하게 만들어서 주변의 지형과 잘 어울렸다. 와이너리는 미리 예약해야 투어를 할 수 있어서 우리는 상점에서 와인만 구매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마을을 둘러봄으로써 짧게나마 산티아고 순례길을 경험할 수 있었다. 경험을 하고 나니 순례길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지기는커녕 더 커졌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여행도 좋지만 오롯이 혼자서 사색하는 여행 역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라뇽에서의 짧은 시간 동안 생각해 봤다. 이번 여행은 모든 가족 구성원과 함께할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기회였다. 부모님은 더 나이가 드실 거고, 동생은 곧 자신의 가정을 꾸릴 것이다. 4명이서 멀리, 오래 여행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을 지도 모른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도 많을 거고,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그라뇽의 시간을 생각하면서 이 여행을 소중히 여겨야겠다.
제이 가족의 팁
1. 엘 시에고는 작은 마을이지만 근처의 와이너리로 인해 관광객이 붐빈다. 엘 시에고에서 밥을 먹고 싶다면 미리 예약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로그로뇨는 까미노 델 산티아고 중 큰 도시로 이곳에서 시작하는 순례객들도 많다. 순례 계획이라면 참고.
3. 프랭크 게리의 작품으로 유명한 마르케스 데 리스칼 내부 투어를 위해서는 예약이 필요하다.
4. 엘 시에고 안에 유명 빵집이 있는데 어떤 빵을 사든 맛있으니 도전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https://maps.app.goo.gl/qzZApw5t8x9GswFw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