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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Nov 26. 2023

만들어진 건 유대인만이 아니다

<만들어진 유대인>(사월의책, 2022)을 읽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수많은 사상자들을 낳으면서 몇십 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세기, 시오니스트들을 중심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영토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이주했다. 영국의 위임통치 하에서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더 나아가 현재 팔레스타인인들이 살고 있는 가자 지구와 서안지구에도 지속적으로 유대인들을 정착시켜 이 땅을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으로 만들고 있다.


 어떻게 영토를 떠난 지 2000년 만에 다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차치하고, 근본적으로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이스라엘이 권리를 주장할 때 근거로 들고나오는 2000년 유랑 역사가 과연 사실일까? <만들어진 유대인>(사월의책, 2022)은 이스라엘의 "본인들 땅에서 추방된 동일한 단위의 유대인"이 허구임을 여러 측면에서 타당하게 보여준다.


 첫째,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은 추방당한 적이 없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유대인 노예들을 이끌고 나왔다는 '출애굽기', 로마 제국의 유대인 추방 등 구약성서를 근거로 주장하는 집단 이주는 실제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고고학적 유물 역시 이러한 역사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스라엘 학자들은 남아있는 유물들을 본인들의 시각에 맞게 재단하여 끊임없이 유대인들의 강제 이주가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발굴된 유물 중 일부는 무례하게도 성스러운 텍스트와 모순되기도 했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말이 없는 유물들을 대신해서 말하고, 그것들을 성서가 들려주는 조화로운 목소리에 끼워 맞추는 식의 논변으로 그런 문제를 교묘히 해결하곤 했다.

222쪽

시오니스트 역사학자들의 이러한 행태는 몇십 년 전 일본에서 행해졌던 음침한 유물 조작 사건들을 떠오르게 한다.


  둘째, 과학적으로 현대의 유대인들은 단일 민족이 아니다. 2000년 동안 유대인들은 통혼, 개종들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섞였다. 시오니스트들은 우생학을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유대인들만의 구별되는, 우월한 유전자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과학적으로 반대되는 증거들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이스라엘 극우 정치가들도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에 현대까지도 유대인과 이교도의 결혼을 제도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본인들은 과거에도 순수한 혈통을 지켰고 지금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거짓 주장들에 대해 하나씩 반박하며 '유대 민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한다. 19세기 말, '국가 정체성'이 탄생하면서 유대인들은 본인들을 '유대 민족'이라기보다는 속해 있는 국가의 국민으로 인식했다. 유대교라는 종교적 정체성보다 독일인, 프랑스인 등의 국가 정체성이 더 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부 국가에서 필요에 따라 유대인들을 구별짓고 차별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국가에서 높은 지위로 올라갈 수 없게 되자 그 대안으로 '유대 민족'을 고안해냈다. 여기에 여러 서방 국가들이 유대인의 이주를 받아들이기보다 시오니스트들이 주장하는 아랍 국가의 땅으로 떠넘겨버리기로 선택함으로써 지금의 이스라엘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 과정이 현재 이스라엘의 태도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 신분증에 종교를 표시해서 불이익을 주고, 종교가 다른 소수의 시민들이 분리되어 생활한다. 몇백 년, 몇천 년 동안 자신의 땅을 일구고 살던 아랍인들은 순식간에 땅을 빼앗겼고, 팔레스타인에는 무자비한 폭격들이 행해진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행동들은 용납될 수 없다. "스스로를 단일 민중으로 보는 어떤 특정한 집단이 자기들의 자결권을 획득하기 위해 또 다른 집단의 땅을 빼앗을 권리는 주어지지 않"(509쪽)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유대인>은 유대 민족주의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그들의 주장이 옳지 않은지를 생각하게 한다. 동시에 지금의 한국도 되돌아보게 한다. 민족주의의 폭력성은 이스라엘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세기 독일과 러시아가 그랬고, 21세기의 한국도 그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다른 집단의 땅을 빼앗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일제강점기 '한민족'이라는 신화가 형성된 이후 배타성이 더 강해졌다. 유대인들처럼 유전자적으로 단일 민족이 아님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문화적 뿌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다른 생김새를 가졌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소외시킨다. 현재 한국을 봤을 때 한민족 역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단일 혈통의 신화 때문에 다민족적인, 더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되물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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