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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Dec 03. 2023

이 소설은 무엇인가

<황니가>(열린책들, 2023)를 읽고

 <황니가>(열린책들, 2023)는 '황니가'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황니(黃泥)라는 이름에 걸맞게 마을은 온통 진흙 구덩이처럼 더럽다. 황니가의 주거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하늘에서 매일 떨어지는 재, 숨 막히는 태양,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더러운 집들과 화장실, 매년 창궐하는 역병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다.


 주민들도 범상치 않다. 입만 열면, 누가 듣든 말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주민들은 점점 더 비이성적으로 변한다. 처음에는 신봉하는 미신에 따라 행동하고 헛소문을 퍼뜨리는 정도였다. 황니가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주민들은 괴상한 행동들을 하게 된다. 죽은 파리와 박쥐를 먹거나, 사람을 우리에 가둔다. 계속 나빠지기만 하는 황니가의 모습. 대화라고는 이루어지지 않고, 아무 말이나 하는 주민들. 작가는 도대체 무엇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일까?


 <황니가>는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현실적이지 않은 배경, 극단적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 심지어 시간의 흐름조차 예측할 수 없다. 사람들이 하루 이상씩 잠을 자고 하늘은 항상 재로 가득 차 있거나, 검은 비가 내리거나, 태양이 사람들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을 보고 '황니가'가 중국의 빈촌을 풍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소설 초반 황니가 주민들은 변소 문제, 환경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위원회를 찾는다. 그러한 노력 끝에 알아낸 것은 그 위원회의 실체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문제들은 계속 쌓여만 갔고 주민들을 더 큰 공포로 밀어 넣었다. '조반파'(문화대혁명 때의 극단적인 단체)의 득세 가능성만을 물어보는 노인, "옛 혁명 근거지의 우수한 전통을 크게 선전하고 확대해야 한다"(310쪽)고 책 내내 주장하는 주 간사는 과거의 영광에만 집착하는, 낙후된 현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위인들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황니가'는 좋았던 과거에 매달리는 사람들로 가득한, 현실의 문제는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현재 중국의 일부 농촌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외에도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을 시도하다,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봤다. 작가는 내 생각과 다르게 오히려 고통 속에서 희망을 찾고,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을 그렸다고 했다. "우리의 삶에는 당연히 고통이 있지만 희망도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죽은 생선 같은 눈을 크게 뜨고 굳세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잿빛으로 희뿌연 하늘에서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변별해 내려고 애쓰면서 말입니다."(조선일보 인터뷰)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나니 비정상적으로 보였던

인물들이 다르게 보였다. 찌는 듯한 날씨에도 솜옷을 입고 있었던 것은 전염병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 박쥐와 파리를 먹는 행동은 기본적인 섭식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툭하면 며칠씩 잠을 자는 것은 절망적인 현재에서 도피하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 죽음에 대처하는 사람들, 중국인의 생명력, 그리고 본인의 생명력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중구난방의 이야기, 생소한 이름, 듣는 이는 없는 일방적인 독백들은 이 소설의 주제를 꽁꽁 숨겨두었다. 하지만 그 덕에 다양한 해석-문화대혁명 또는 중국의 모습을 풍자하는 것이거나, 철학에 대한 것이거나, 생명력이거나-이 가능했다. 여전히 어떤 소설인지 알기는 어렵지만, 여러 접근과 고민을 하게 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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