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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Nov 20. 2023

이성과 감성의 우정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민음사, 2023)를 읽고

 사람들은 흔히 이성과 감성이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종종 상대방에게 불만을 표시할 때 이런 말들을 사용한다. "너는 매사에 너무 감성적이야" 또는 "좀 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이성에 비해 감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는 이러한 상황을 비판할 것이다.

 골드문트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간 마리아브론 수도원에서 수도사의 길을 걷는 나르치스를 만난다. 나르치스는 특유의 통찰력으로 골드문트가 사제의 길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꿰뚫는다.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와의 대화를 통해 잊고 있었던 어머니의 기억을 깨닫고, 자신의 본성을 따라 수도원을 떠난다. 골드문트는 방랑의 끝에서 무엇을 마주하게 될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서로 상반된 기질을 가졌다. 나르치스는 이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성숙하고 날카로우며 논리적이다. 골드문트가 흥분해서 감정적인 말을 할 때마다 여러 지식과 타당한 근거를 내세워 반박한다. 동시에 끊임없이 내면을 단련하고 학문적으로 사고한다. 반면, 골드문트는 감성을 대변한다. 충동적이고 감성적이며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많은 여성들과 유희를 즐기고 발길 닿는 대로 떠돌아다닌다. 그러다 페스트로 인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유대인 차별 등을 목격하고 그들의 아픔에 분노한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민음사, 2023)는 골드문트의 이야기에 중점을 둔다. 쾌락만을 추구하며 가벼워 보이던 골드문트가 어떻게 필생의 역작인 마리아 상을 만들게 되었는지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얼핏 보면 골드문트의 성장소설 같다. 하지만 나르치스가 없는 골드문트의 이야기는 성립하지 않는다. 나르치스가 없었다면 골드문트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마리아브론 수도원에서 평생을 썩었을 것이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예술가적인 기질을 발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그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골드문트가 수도원을 떠난 이후에도 그는 끊임없이 나르치스에 대해 생각하고 그리워했다. 그러다 나르치스의 모습을 본 따 사도 요한 상을 만들기도 했다. 골드문트가 원하던 어머니의 형상을 만드는 데에도 나르치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나르치스 역시 골드문트에게 영향을 받았다. 골드문트는 정해진 길을 걷고 있던 나르치스가 일상에서 벗어난 생각을 할 수 있는 영감을 제공하였다. 그러면서 금욕적이고 이성적이며 도덕적인 삶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


오히려 골드문트가 그에게 생각거리를 주고 충격을 주었으며, 자신이 믿던 것을 회의하게 하고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451쪽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성격, 살아온 삶에서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그랬기에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실한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헤어지고 나서도 항상 서로를 생각하며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떠올리며 채워나가고자 했다. 나르치스가 했던 말처럼 둘에게는 서로가 있었기에 자아실현을 할 수 있었고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헤르만 헤세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이성과 감성은 서로 완전히 분리할 수 없다. 또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우위에 있다고도 말할 수 없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우정처럼 이성과 감성은 불완전한 인간의 "잠재적인 것을 실현시키고,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바꾼다." 이성과 감성이 함께 기능해야 인간은 "참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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