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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Nov 12. 2023

이데올로기의 광풍 속 고독한 개인

<코뿔소>(민음사, 2023)를 읽고


 어느 날 나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사람이 코뿔소로 변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유럽의 한 소도시, 갑자기 코뿔소가 도심 한복판에 등장한다. 점차 코뿔소가 늘어나고, 마침내 모두가 코뿔소가 되기로 선택한 가운데, 매일 술만 마시고 꾀죄죄한 소시민 베랑제만이 인간으로 남아있다. 베랑제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외젠 이오네스코의 희곡, <코뿔소>(민음사, 2023)는 이데올로기의 광풍이 사회에 들이닥쳤을 때 사람들의 심리를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사회에 퍼지면 이에 동조하는 많은 사람들과 대항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생긴다. 책에서 코뿔소가 되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이데올로기를 신봉하게 되는 군중들을 대변한다. 이들은 처음에는 코뿔소가 된 사람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하지만 점점 그 수가 늘어나자 그에 가담하게 된다. 심지어 작가, 성직자, 고위 관료들까지 이러한 현상에 뛰어든다. 코뿔소는 물건을 부수고 소란을 일으키는 골치 아픈 존재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소수자가 되느니 코뿔소가 되는 것을 선택한다.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은 우발적인 충동에서 그런 게 아니라 공동체 정신을 선택한 거라고. 

159쪽

 마지막까지 인간으로 남은 뒤다르, 데이지, 베랑제는 코뿔소 병에 대항하지만 차츰 그 태도가 달라진다. 뒤다르는 시종일관 제3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코뿔소가 되기로 결정한다. 데이지 역시 초반에는 코뿔소 병에 저항하지만 무기력하다. 그러다 코뿔소들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코뿔소가 된다. 마지막까지 코뿔소들에게 대적하는 베랑제도 혼자 남은 인간이라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끊임없이 흔들린다. 

아름다운 건 그들이야. 내 생각이 틀렸어. 아!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어!(중략) 아냐, 그럴 순 없어! 난 그들에게 맞서 나 자신을 방어할 거야!

186-188쪽

 이 책은 나치즘의 소용돌이를 직접 겪은 작가가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휩쓰는 모습을 풍자해서 쓴 극이다. 마르크스주의, 나치즘, 파시즘 등의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로도 사람을 매혹시키는 힘이 있다. 여기에 군중심리까지 더해진다면 정말로 헤어 나올 수 없다. 여론과 주변인들이 압박하는 상황에서 한 개인은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은 베랑제처럼 회피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다른 나라로 망명을 할 수도 있다. 다른 방법은 희생을 각오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나치즘 하에서 나치에 대항하자는 선전물을 돌린 한스 숄과 조피 숄처럼 말이다. 분명히 후자가 더 고귀한 행동이다. 하지만 그만큼 행동하기는 훨씬 어렵다. 사회적 소수는 힘이 약하고 다수의 생각을 바꾸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회피하거나 눈을 감아버리면 방관자가 되어 그 역시 사회의 부조리함, 폭력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파도 앞에서 이에 저항하는 개인은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이오네스코의 <코뿔소>는 끊임없이 질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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