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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Dec 16. 2023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족각본>(창비, 2023)을 읽고

 30대가 되자 기다렸듯이 쏟아지는 동일한 질문을 맞이하게 되었다. "결혼 안 하니?" 20대 때는 별말씀 없으시던 부모님도 넌지시 한 마디씩 하신다. "남들 다 하는 결혼, 너도 해야지." 결혼 - 출산 - 육아. 마치 짜인 각본 같은 삶의 경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길에서 벗어나면 바로 '비정상'으로 낙인찍힌다. 하지만 동거 커플, 동성 커플, 1인 가구 등 점차 정상보다 비정상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각본>(창비, 2023)은 우리 사회가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정상가족의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이 질문에 한 걸음 다가가게 한다. 동성 커플의 결혼, 출산부터 성교육까지, 우리 사회의 '정상 가족'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를 일깨워준다. '정상 가족' 환상은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각본에 의해 정교하게 짜여왔다. 결혼과 출산 부분에서 가족각본은 더 정교하다. 프랑스, 독일 등 다른 나라들이 결혼과 출산을 별개로 인식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출산과 결혼을 긴밀히 연결 짓고 있다. 결혼 제도 밖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환영받지 못한다. 많은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해외로 보내진다. 아니면, 사회의 차별에 평생 시달린다.


가족각본은 결혼 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도 냉혹하다. 가족각본은 아이를 자신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한다. '아이의 정서에 좋지 않다'라며 LGBTQ 커플의 결혼과 출산을 반대한다. 하지만 책에서 제시된 사례들을 봤을 때, 동성혼이든, 이성혼이든, 사실혼이든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돌아갈 안정적인 가족이다. 아이가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많은 아이들은 이런 공동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초저출생 현상의 원인은 동성 커플의 증가도, 1인 가구의 증가도, 결혼율의 감소도 아닌 여기에 있다. 가족각본이 아이를 안전하고 안정된 가족에게 보내는 대신에 돌봄 시설로 몰아넣고, 그 부모에게는 노동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양육하고 싶은 부모의 욕구와 부모와 함께 지내고 싶은 아이의 소망을 국가와 기업의 노동 수요로 다 무시해버린다.

"그럼에도 국가의 '가족 정책'은 여전히 가족이 공동생활을 위한 시간을 갖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일보다, 아동을 돌봄 기관에 맡김으로써 국가와 기업이 노동력을 확보하게 만드는데 집중되어 있다. "(200쪽)


 최근 저출생,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요구 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가족각본에 미세하게나마 균열이 생기고 있다. 2022년 대법원은 미성년 자녀를 둔 성 전환자의 성별 정정과 관련하여 "차별하는 쪽의 편견과 몰이해를 바로 잡"(184쪽) 아야 한다며 이를 승인했다. 또한 혼인하지 않은 커플에게도 혼인 관계와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생활 동반자 법'도 논의 중에 있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결혼 밖 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세계 3대 아이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아이들을 학교나 기타 시설에 12시간씩 가두어놓고 부모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은 시설에서 돌볼 테니 너희는 가서 12시간씩 일해라." 가정에서의 나눠진 성 역할이 아직 공고함은 물론이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형태, 가족 구성원의 성별을 떠나 '가족'은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따뜻한 돌봄을 구성원끼리 주고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런 역할을 하는 정해진 길에서 벗어난 다양한 모습의 자발적 공동체들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이 공동체들에게도 "가족으로서 안정감을 누릴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 공동체들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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