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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Jan 22. 2020

"자장면이라도..." 이국종 교수를 위해

이국종 교수를 만난 건 2018년 5월이었다.

개편을 맞아 <김기자의 눈>을 론칭하면서,

새프로의 첫 출연자로 누굴 인터뷰할까 생각하다,

기대도 없이 아주대병원 홍보실로 전화를 했다.

그렇게 기대없이 기다리다, 연락을 받았다.

'이국종 교수의 인터뷰를 진행하셔도 좋습니다.'

단, 인터뷰는 가능하나, 스튜디오 출연은 어렵다. 언제 어떤 응급환자가 발생할 지 모르므로.

제작진은 병원으로 직접 찾아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5월 마주막 주 금요일에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갔다.

인터뷰시간은 오후 2시쯤으로 기억하나, 약속시간엔 딱 맞추지 못할 수도 있단 얘기를 사전에 들었다.

그날은 어딘가에서 외상센터 감사까지 나와, 일정이 몹시 유동적이라고 했다.

기술감독님들과 나, 진행자 뉴스타파 김경래기자, 프로듀서까지,

안내받은 작은 회의실에서 우리는 일찌감치 녹음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시간 쯤 지났을까?

드뎌 티비에서만 뵀던 이국종 교수가 나타났다.

수술복과 진료 가운을 겹쳐 입은 이국종 교수는 제작진과 눈도 못마주치며

거듭 미안하다고 하다,

의료진과 홍보실 직원을 향해 버럭 화를 냈다.

"내가 이래서 인터뷰 잡지 말랬잖아요. 한정없이 기다릴 수 있다고 인터뷰 잡지 말랬잖아요."

우리를 보곤 "이래서 제가 인터뷰 안합니다. 제가 이래서 인터뷰 약속 안잡아요. 이렇게 기다리시게 하니까"

괜찮다고 얼마든지 기다리겠다고 말씀드려도 이국종 교수는 안절부절 어쩌지를 못했다.

몇번이나 미안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그날 하필이면 감사가 나와서기도 하고,

조금 전 70대 낙상환자가 들어와 수술실에도 들어가봐야 한다며,

기다리면서, 교수님의 방구경이라도 하라고 했다.

반가운 배려였다.  

이국종 교수의 방은 생각보다 작았다. 특이할만한 건, 작은 연구실 안에 샤워시설이 있었다.

여기서 먹고 자고 합니다.

소방관복이 눈에 띄었다.

이걸 입고 헬기를 탑니다.

장화도 있었다.

그걸 신고 헬기를 탑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3시간이 지나서야 인터뷰가 시작됐다.

교수님은 다시 미안하다 죄송하다.

그러길래 왜 인터뷰를 잡아 이렇게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냐고 의료진과 홍보실을 나무랬다가

몇번의 사과 후에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질문 몇개나 나가기도 전에, 교수님은 한숨과 울분을 토해냈다.

바로 요즘 언론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그 내용들이었고,

당시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외상센터와 이국종 교수의 얘기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당신과 외상센터가 받은 부당한 대우를 기록도 하고, 자료도 모아두었다며

와서 보라고도 했다.

함께 동거동락하던 간호사가 헬기구조를 하다 손가락이 절단됐는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채, 의료인의 삶을 접었다며 가슴을 쳤다.

나의 동료 뭐 교수는 기어이 이곳을 떠났다고도 했다.

들고 있던 파일을 책상에 던지며 울분을 토했고.

이런 모습을 보여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도 했다.


방송에서 뵀던 그 단단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헬기가 시끄럽다고 뜨고 내리는 족족,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한다는 대목에서 가슴을 쳤고,

언제가 가장 보람이 있냐고 하자, 이 열악한 환경에서 무슨 보람이겠냐고 하면서도.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를 살리고,

훽훽 돌아가는 헬기 프로펠라 앞에 서서,

구급대원들을 비롯한 의료진들이 엄지척 치켜세우며, 서로를 마주볼 때,

가슴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끓어오른다고 했다.

그 감동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들어도 이 일을 한다고 했다.


인터뷰는 세시간 넘게 진행됐고, 대낮에 도착한 우리는 저녁 9시가 다돼서야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도,

이국종 교수는 미안해서 어떻게 하냐며, 이렇게 기다리게 해서 어떻게 하냐며 미안해 했고,

"자장면이라도 드시고 가세요. 자장면이라도." 간호사를 부르며,

어서 자장면을 시키라고 하셨다.

우리는 갈길이 멀고, 가서 편집도 해야 하고. 어서 가봐야 한다며 손사레를 치며, 돌아왔다.

이제와서 드는 생각은

자장면이라도 시켜서 같이 먹고 왔어야 했나?

그날 저녁은 드셨을까?

회의실 혹은 연구실에서 벗없이 혼자 저녁으로 자장면을 드시진 않았을까?


그렇게 2018년 5월 이국종 교수를 만났다.

오랫동안 잔영이 남는 인터뷰였다.

그 명성과 그 단단함에 가려진 고단함이 오랫동안 아린 잔영으로 남았다.

당시 우리에게 울분을 토하며, 겪었던 일, 그 일에 대한 자료들을 보여주면서도

그렇다고 그 일이 죄다 세상에 알려지길 바라진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의 이 어지러운 상황들, 외상센터를 떠나고야 말겠다는 말씀. 평교수로 남겠다는 말씀....

다신 헬기를 타지 않겠다는 말씀

웬지 아리게 남는다.

다시 헬기를 타지 않는다면,

일생의 낙이며 보람이라던

헬기 프로펠라 앞에서 구조팀원들과 마주보는 일도 이제 없지 않겠는가.


이국종 교수님은 순수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왜 외상센터, 응급의학과를 선택하셨어요?'라는 질문에

여기 몇년 있으면, 딴과로 옮겨준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이국종 교수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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