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처럼 글쓰기? '글' 말고 '말'을 써라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나요? 작가님?"
"잘쓰지 않아서 몰라요."
"에이~ 그럴리가요."
공중파 방송작가 짬밥 23년차.
흔히 듣는 질문이고,
매번 하는 답변이다.
그러나, 겸손이 아니라, 이게 팩트다.
'글'을 쓰지 않는다. '말'을 쓴다.
방송작가는 눈으로 읽는 '글'이 아닌
입에서 나오는 '말'을 쓰는 사람이다.
방송작가가 어느정도로 말을 쓰는 사람이냐면.
가령,
"이 아이의 엄마입니다"
라는 문장을 우리는
"이 아이의 엄맙니다" 라고 쓴다.
'교과서입니다'는 '교과섭니다'
'화제입니다'는 '화젭니다'
진행자가 혹은 나레이터가 읽는 그대로를 쓴다.
내가 방송작가를 대변할 수도, 그럴 깜냥도 못되지만,
내가 생각하는 잘쓰는 글은 그렇다.
쉽고 재밌어야하며, 끄덕 공감이 돼야 한다.
일기가 아닌 이상, 글엔 독자가 있기 마련이다.
면전에서 잘난척하는 사람의 말은 싫어도 듣는 척은 해줘야 하지만,
잘난척하는 글은 곰질곰질 씹어뱉던지, 얼마든지 도망쳐버릴 수 있다.
어려운 단어 유식한 말포장은 독자로부터 외면 당할 수 밖에 없다.
세계적인 명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와 칼세이건의 '코스모스'.
들어는 봤으되, 감히 읽은 엄두가 나지 않아 베개로 사용해왔다면,
지금 당장 첫장을 펴보기를 권한다.
그들이 전하는 지식은 깊되, 언어는 얕다.
얕아서 가벼운 게 아니라, 얕아서 쉽게 발을 들여놓게 한다.
그래서 감히 그 어마무시한 깊이의 정보에
깊은 줄도 모르고 노닐다, 그들의 지식과 글에 퐁당 젖어 나온다.
난 작문 실력이 백미터 달리기 실력처럼 타고난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깟 단어들의 조합이 뭐라고, 타고나기씩이나 할까?
글짓기가 어렵다는 수많은 이들.
멀리 갈것도 없이, 우리집 아해들만 하더라도.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만 바라보며, 안써진다. 못쓰겠다 한다.
글은 손이 아닌 머리가 쓰는 거다.
글감이 정해졌다면, 컴 앞에 앉기 전에 먼산을 바라보라.
깊이 생각하고 구상하고, 구성하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 말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선,
머릿속에 한장의 그림이 완성돼야 한다.
독자를 어떻게 꼬셔내야할지를, 영리하게 구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아무리 딱딱한 글이라도
에피소드가 필요하고, 스토리텔링이 돼야 한다.
함께 일했던 피디와 후배작가들이,
이구동성 내게 하는 말은 '참 빨리 쓴다'는 말이다.
실제로 20분짜리 질의서는 10분이면 뚝딱 쓸 수 있다.
쉽게 쓰는 것 같지만,
난 이미 머릿속으로 만가지의 생각과
만번의 교정을 끝낸 상태다.
머릿 속에 그림이 완성되지 않았다면,
컴퓨터 앞에, 노트 앞에 앉지 말아야 한다.
진솔해야 한다.
얼마전 누군가의 자서전 대필을 제안받은 적이 있는데,
종국엔 거절했다.
주인공은 자신의 못배우고 가난했던 과거는 숨기고,
자수성가한 현재의 모습만 그럴싸하게 그려주길 바랐다.
진실하지 않은 글에 독자는 반응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책장 위의 책이 될 것인지,
재활용 폐품장의 책이 될 것인지는, 까발릴 건지 말건지, 진실에 대한 나의 태도에 달려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글을 씀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구성과 브릿지다.
브릿지는 일반인들에겐 생소하지만,
방송작가나 피디들에겐 중요한 개념이다.
그야말로 다리다.
어떤 문장 어떤 그림도 브릿지 없이는
낱장의 카드뉴스에 불과하다.
문장과 문장엔 반드시 다리가 놓여야 하고,
건너뛰는 징검다리가 아니라,
빈틈없이 강남북을 잇는 한강다리 같아야 한다.
열문장과 열단락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하고,
한덩어리의 개연성 있는 스토리가 돼야 한다.
내 글에 기름기와 힘만 빼도, 지금 당장 백일장 장려상은 받을 수 있다.
우수상을 받으려면, 내 글을 완독할 수 있도록
심사위원을 어떻게 구워삼을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다만, 내가 이런말 할 자격도 없는 사람인 게.
이미 나의 이 글을 끝까지 완독한 독자는
처음 열명 중 한명도 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난 이만 입을 닫고, 여기서 이만 총총.
덧. 책은 많이 봐야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설령 잘쓰더라도 글에 깊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