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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May 25. 2020

화성에서 온 남편, 금성에서 온 아내

***주의: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겨들기 없깁니다. 개그 찍는데 다큐찍지 말자는 얘기~^^


부제로는 '결혼 전에 알았더라면, 너랑 결혼 안했다'로 하고 싶습니다. ^^



달랑 남매 둘, 위로 일곱살 터울의 오빠만 있는 우리 집에선

난 나름 공주처럼 자랐고.

어려서부터 빼빼말라 골골했던 나는 잔병치레도 잦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아플라치면

엄마아빠오빠가 밤새 내 머리맡을 지키며, 진심어린 우려와 때론 눈물까지 보태며, 마음 아파했다.

특히나

어떤 슬픈일이나 스토리에도 웬만해선 눈물 1도 않는 '감성제로' 애많은김자까는

유일하게도 제몸 아프면 대성통곡하는 몹쓸 지병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집에선 딸이 아프면, 비상사태였다.


올해가 결혼 20년째니, 20년 전의 일이 되겠다.


결혼 해서, 얼마 안된 신혼의 어느날이었다.

결혼식이라는 고단한 통과의례 탓에 피로감이 몰려왔는지, 며칠 후부터 몸살기가 찾아왔다.

증상은 점점 심해져, 열이 39도를 왔다갔다 했고,

그렇게 밤이 됐다.

대개가 그렇듯 밤이 되면 열은 더 오르는 법.

아빠 생전의 친정에서라면, 가족 모두가 내 머리맡을 지켰을 상황이다.

하지만, 그날. 애많은 이피디는 머리맡이 아닌 침대 옆자리를 '지키고' 아니고 '차지하고' 있었다.


급기야 열에 들떠서, 눈물이 찔끔씩 나기 시작하더니 대성통곡의 단계까지 이르렀는데,

어라~~이누무 애많은이피디를 보았나?

그 와중에도 코를 골며, 잠이 와?

이런 경천동지 할 일을 보았나?


눈물보단 설움과 악에 바쳐 나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내가 이렇게 아픈데, 잠이 오냐? 잠이?!! 팍~~씨~~"

가뜩이나 남편의 작은 눈이 졸음으로 더 실선마냥 돼선

-어...어...? 많이 아파?

 "많이 아파아아~~??"

난 열에 들뜬 상태에서도 말 꼬랑지를 쭈욱 끌어올리면서, 남편을 꼬라봤다.

그러자, 남편은 울상이 돼서,

- 미안. 그런데 내가 안 아파봐서. 아픈게 어떤 건지 몰라....정말 미안


지난 주말이다.

나를 방송국까지 데려다 준 애많은이피디는 1,4,5호와 간단한 산책을 하고

밥을 먹으며

내가 생방송 마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4시쯤 됐을까. 점심식사를 하지 않았던 탓에, 슬슬 시장기가 돌았다.

(많이 먹진 않지만, 배고픈 거 절대 못참는 애많은김자까)

그리하여, 애많은이피디에게 톡을 보냈다.


'나도 배고파'

묵묵부답..........


5시 생방을 마치고,

즐거운 마음,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송국 문을 나섰다.

본관 앞엔, 애많은이피디가 차를 딱 대령하고 서있었다.

난 깨발랄하게 차에 올라타자 마자


"배고파 배고파~~뭐사왔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도 깨발랄하게

- 안사왔는데?!!

"장난하지 말고, 빨리 내놔. 배고파 죽겠어"(이때까지는 분위기 좋았다)

-아무것도 안사왔다니까


이때, 뒤에 앉아있던, 1호 울상이 돼선

"아빠, 그러길래 사오자고 했잖아. 사가야 된다니깐....엄마 화낼 거라고 했잖아."

- 엄마가 배고프다고 했지. 뭐 사오라고 안했어


뭐야? 진짜 안사왔어?!!!!

순간 등줄기부터 백만볼트의 열이 정수리까지 치받쳐올라왔다.


내가 뒤끝없기로

정치1번지 종로에서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운

투엑스라지 대문자 오형이라지만, 뒤끝이고 뭐고.

용서가 안됐다. (잠깐 이혼도 생각했음)


그 후로 며칠 동안

니밥은 니가 차려 먹으세요.

설거지도 니가 하세요.

옷도 니가 빨아서, 니가 다려서, 니가 찾아서 입으세요.


그렇게 금성인의 화성인에 대한 보복의 여정이 진행되던 어느날, 모 방송사 녹화 당일.

피디 엠씨 패널. 나빼고 남 둘, 여 둘이 둘러 앉아 있는 상황에서

난 '대체 이럴 수 있냐'며 거품을 물고 그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여둘은 세상 천지 말도 안된다고 격분 공감했고,

남둘은 "그게 뭐 어때서?

배고프다고 했지, 뭐 사오라고 하지 않았잖아"라고 해서,

녹화 파토낼 뻔.(ㅎㅎ)


와아~~~~~정말 공감 능력 제로.

남편들은 곧잘, 아내가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서 전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배가 고파...라고 하면, 본인 허기졌을 때를 떠올리고.

아프다...고 하면, 본인 아팠을 때를 떠올리며,

안쓰럽고 안타깝고 가슴아픈 공감들이 세트로 따라와야 정상이 아니냔 말이다.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죽도록 사랑하며 살기로 한, 내 반쪽이 그렇다는데!!


왜 말을 안하고, 그 외계어를 남편들이 알아듣길 바라냐고?


가령,

남편이 퇴근해서 들어와.

'밥줘'빼고 "나 배고파"했을 때,

아내가, 소파에 모로 누워 TV리모콘만 돌리고 있다고 치자.

남편이 그런 아내를 보고 "왜 밥 안줘?" 라고 했을 때,

아내가 "배고프다고 했지. 밥 달라고 안했잖아"라고 하면,

남편 그대는 깊이 반성하시고,

"밥 쥬떼요"를 하시겠냐는 말이다.



그 '나도 배고파' 사건이후,

애많은 이피디는


"이번달 카드값 부족할 것 같은데...."

"................"


다음날,

"내 계좌로 돈 안보냈어?"

"내가 왜?"

"카드값 부족할 것 같다고."

"카드값 부족하다고 했지. 돈 보내달라고 안했잖아."

"..................그럼 카드 펑크날 텐데.............."


"저기요. 그쪽 카드 펑크고요.

제 카드는 안전합니다만.

무슨 얘기냐면, 그건 그쪽 사정이고 내 사정이 아니라는 거.

내배 고프면 내배가 내 등짝에 들러붙지.

그대의 등짝에 들러붙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란 말이지.

배아프면 니X 니가 싸는 거랑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화성에서 오셔서 금성말을 잘 모르시나 본데요. 그런 게 있어요.

공감이 안되면요. 암기를 하세요. 암기를~~"


화성에서 온 민족들이여~.

님들이 그간 편하게 살아 온 건

금성에서 온 민족들의 탁월한 공감과 이해능력, 그리고 애끓는 배려 덕임을 잊지 마시길....


구독자님들 안녕하셨나요?

저~~~~~~~엉~~~~~~~말 오랜만이죠?

저도 님들의 안부가 궁금했답니다. ^^

생존 신고하고 갑니다. 조만간 다시 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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