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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Jul 10. 2019

남편이, 내 아들이 아니라 다행입니만.

방송출연이 뭐라고...

며느리 입장에서 효자 아닌 남편이 있을까?

애많은이피디=남편 역시 효자다. 단지 행동하지 않는 효자일 뿐.

말그대로 心은  효자인데, 身이 따라주지 않을 뿐.

뭐 사실, 행동하지 않는다기 보다, 눈치가 없다. '센스가 돼지발톱.'


정작 시부모님은 아들의 이런 성향을 모르셨던 것 같아, 내가 몇번은 넌즈시 귀뜸해 드린 적은 있다.


"어머니, 어머니 아들은 딱 짚어서 얘기해줘야 알아요. 아주 콕콕 찍어서. 빙빙 돌려가며 말하면 몰라요"

"어머님은 '아들이 이것 좀 해주면 좋겠다' 싶어 에둘러 얘기하면, 제꺽 할 것 같죠? 말 안해도 눈빛만 봐도 알 것 같죠? 아뇨.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에요. 어머니 아들은 아주 통풍이 잘 되는 귀를 가지고 있답니다.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내는......"


그러나 대개의 부모가 그렇듯, 세상 내새끼같은 새끼가 없고,

몇년 산 며느리보다야,

내 속으로 낳아 내 손으로 키운 내(시어머니)가 더 잘 알겠거니 싶으시겠지.

게다가 내 아들이 명문대학을 나왔는데,

말귀를 못알아 들어?!!!

이런 말코같은 소리~~~

과연 그럴까요? 어머니의 말띠 아들이 말코 아닌 개코를 가졌을까요?


자.자~~그러면, 이제 누구말이 맞나 한번 보자구요.


상당수 사람들은 방송일 한다면, 대단한 권력을 갖고 있는 줄 알지만.

절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냥 내 프로그램을 하는 방송쟁이일 뿐.

그럼에도 별의별 청탁과 부탁들이 지인의 지인, 사돈의 팔촌의 이름으로 무수히 답지한다.

명색이 작가다보니, 해마다 딱 요맘때부터 시작되는 '자기소개서 써달라 봐달라' 요청은

재능기부 요청 차원에서 뭐 그럴 수 있다 치겠지만, (올해는 '자소설'로 연락하지들 맙시길)

대체 병원예약을 피디나 작가에게 부탁하는 건 뭔지. 병실을 잡아달라. 수술을 당겨달라. 예약을 당겨달라.

우리가 무슨 수로?? 저기...아시면....방법 좀..............

그 중 가장 난감한 게, 방송출연 요청이다.

우리 사돈의 팔촌의 아들이 가수지망생인데, 어찌 좀.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데, 어찌 좀.

그래서요? 그런데요?

"오디션이나 공채 시험을 보시면 됩니다" 밖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우리가 무슨 수로.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다시 강조하자면,

'애많은이피디는 눈치가 없다.' '에둘러 얘기하면 절대 못알아먹는다.'


#도라지타령~

도라지꽃/출처 네이버이미지


몇년전 합천시댁에서 '남편과 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한 상에 마주앉아 점심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두분이 서로 눈치를 주고 받는 게 심상치 않았다.

(물론 애많은이피디는 이런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밥그릇 국그릇에 코를 박고 열혈 식사 중이었다. 정말 뭘하든 집중력 하나는 '갑'이다)

급기야 두분은 서로를 쿡쿡 찌르고, 머리를 절레절레 한쪽 눈을 찔끔찔끔 하다가

'그래도 말이라도 꺼내보라'는 아버님의 제스처에 눌려, 어머니가 먼저 입을 뗐다.


시어머니    :    어제 말이다. 이 더운데...저 옆동네 먼당(꼭대기)에 사는 아재가 찾아왔디라.


남편이 반응이 없자. 눈치를 보던 두분.


시아버지   :     그르게~~~ 더운데 여기까지


보다못한 내가, 오로지 식사에만 열중하고 있던 남편을 쿡쿡 찔렀다.


남편    :     (흘끗보며) 왜요?


두분, 반색하며 기다렸다는 듯이


시어머니    :     그게 말이다. 큰아들이 피디라는 소리를 어디서 듣고선. 아이구. 우리는 어디가서 얘기도 안하는데, 사람들이 어찌 알고들


이쯤해서 나는 대충 상황이 그려진다. 볼보듯 뻔한 상황. 내가 할 일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기'


시아버지    : 그 아재가 도라지 농사를 짓지.

시어머니    : 그래 도라지.

시아버지    : 그래서, 방....송....에 한번 나가고 싶은기라...그 뭐시냐...6시 내** 이런데....


그제서야 남편이 잠깐 고개를 들어 본다. 두분을.

두분의 눈엔 기대섞인 긴장감.


시아버지    : 이 냥반이 저번에 창원 mb*도 한번 나갔다더라...아주 길게~~

남편    : 그래요? 창원 mb*에 나갔으면 됐네요.

시어머니    :  (스치는 낭패스러움) 아이구. 그러면 될텐데. 창원은 지역이니까...전국 방송을 한번 타고 싶은 거지. 6시내**.

남편    :  신청하라 하세요. 홈페이지에.

시어머니    :    아이고, 시골사람들이 그게 신청한다고 되겠냐. 누가 쫌 밀어줘야 빽이 있어야...

남편    :   엄마. 그런 거 하나도 없어도 돼요. 제작진이 판단해서, 방송 소재가 된다 싶으면 하는 거죠. 그분이 도라지로 뭘 하시는데요. 방송에 나가려면 뭐가 특별한 게 있어야지.

시아버지    : (말문이 막힌듯.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 도라지를.............아주..................많~~~~~~~~~~이 한다.

시어머니    :    그래. 아주 항거 한다 항거(많이) 도라지를.

남편    : 엄마. 전국에 도라지 많~~이 하시는 분은 몇천명은 될 껄요. 그분들이 다 6시내**에 나가겠다고 하시면,  그 프로는 도라지 방송만 하다 10주년 됐을 거에요. 도라지로 옷을 만든다거나, 아니면 그밭에선 도라지가 산삼이 되거나. 뭐가 있어야죠. 뭐가


읽기에 따라서 인정머리 없는 아들로 보일 수도 있으나, 전혀. 남편은 식사에 집중하되,

최대한 친절하게 방송의 현실을 설명하고 있었고.

난, 이 '동상이몽' 상황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 지, 진심 기대됐다.


이렇게 두분 입장에선 울고 싶은 몇번의 도라지타령이 오고가다, 아들의 반응에 의기소침해지셨고.

간간히 며느리를 보며 지원사격을 바라시는 모양이었으나,

아들보다 더하면 더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일언지하 "안돼요" 밖에 없었으므로, 입을 다물기로 했다.

상황은 대충 이쯤해서 정리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1막 2장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실망한 눈빛이 역력했던 아버님이,

마침 생각났다는 듯

다시금 눈을 반짝이며 말씀을 꺼내시는 게 아닌가?


시아버지    :    참. 산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집에 아주 귀한 게 있다.

남편 : 뭔데요? 산삼이 있어요?

시아버지 : 아니. 엿이다




순간 엿이라는 어감 때문에 나는 밥먹다 뿜을 뻔. 그러나 두분은 결사 진지했고, 남편은 열라 무신경했다.


시어머니    : 우리집 큰 항아리에 엿이 있다. 니들한테 말은 안했다만. (비밀인듯 은밀하게)

시아버지    : 그 엿이 자그만치 20년 된 엿이라....

시어머니    : 근데 그게 말이다. (마른 침 넘어가는 소리) 20년된 엿은 산삼보다 좋다더라. 구할 수가 없대. 값을 매길 수도 없단다.

시아버지    : 그래서, 니들이 판로만 좀 찾아주면, 아주 대박이 나는 거지

시어머니    : 우리야 어디 팔데를 알아야 말이지. 니네가 팔만한데를 뚫어주면(유통)...


남편    : (어쩔라고 밥숟가락까지 내려놓고, 관심을 보인다) 그래요? 엿이 그렇게 많아요?

시엄빠 : (결연했다 두분은. 눈도 반짝였다 두분은.) 그래.

남편    : 그렇게 좋대요?

시엄빠 : (끄덕끄덕) 그래

남편    : (완전 진지) 그럼................................어머니 아버지가 다 드세요. 남으면 저희도 좀 주시고요.


난 그때,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피디야!! 개그찍냐?

정말이지. 그때 두분의 실망하는 표정과,

아무일 없었다는 듯, 그 상황에서 국 한그릇 더 찾고 있는(자빠진) 눈치없는 남편이란.

내 아들이 아니라, 어머님 아들이라 얼마나 다행인지요.


난, 사실 분위기만 무르익었다면,

그때 조근조근 설명을 해드리고 싶었다.

20년된 엿이 산삼보다 좋으면,  심마니들 너도나도 산에서 내려와 엿을 만들었겠죠. 어무니.


여튼 이후로, 시부모님은 당신의 아들에게 누군가의 방송출연을 부탁하는 일은 하지 않으셨다.

시부모님 역시 평생 남에게 베풀고 나눠주기 좋아하셨던 분들이라,

누가 부탁하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실 뿐.


비단 우리 시어른들만 그럴까?

그저 주변의 누가. 건너 건너 사돈의 팔촌이 아쉽고 필요하다면,

내 일처럼 팔소매를 걷어부치고 나서는 게,

우리네 정서이고.

그런 오지랖이 정스런 시골인심이라는 거 아니겠는가?


이런 일이 있은 뒤, 몇년 후 남편에게 이 사건을 복기했더니. 남편은 그런 일이 있었냐며, 기억도 못했고,

어머님과 아버님은 사무치게 기억하고 계셨다.

그래서 말씀드리기를, "어머니, 그런 일은 우리가 할 수도 없는 일일 뿐더러, 어머니의 아들은 그렇게 빙빙 돌려 말하면 못알아 들어요. 괜히 말꺼냈다 서운해하지 마시고, 정확하게 원하는 말씀 하시고요. 누군가 큰아들 통해 뭔가 부탁하면, 어머니가 알아서 거절하세요. 보셨잖아요."

어머니 왈 "내 다시는 그런 말 안할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동네 사람 누가 허리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수술이 여름이라...농번기 전에 수술을 하고 싶으시다고.

(그건 병원 가서 말씀하셔야....)

혹시 '김영란'이라고 들어보셨는지...ㅎㅎ


며느리는 프리랜서 방송작가(애많은김자까)일 뿐이고,

아들은 방송국 월급쟁이일 뿐이랍니다.


덧. 그나저나 이제 30년이 됐을 그 엿은 어찌 됐는지. 아직 구경도 못해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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