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야, 집에 좀 가라, 집에 좀. 쟤는 새벽 세시에 회사앞 포장마차에 가면 꼭 있어. 아주 하루를 안빠져요. 하루를"
좌중은 폭소했고. 여기저기서
"나도봤어""나도봤어. 재*리" "역시 재*리" 異口同聲~
난, 그때...사무실 구석 어디선가 팔짱과 다리를 꼬고 앉아
뱁새 눈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쯔쯧, 저집 마누라도 속꽤나 썪겠다.'
일년여 뒤. 내가 저집 마누라가 될 줄도 모르고.
그런 첫만남 뒤. 우리는 어찌어찌하다가 일년 뒤 결혼에까지 이르게 됐다.
정작 연애 경험이 없고, 연애 감정도 몰랐던 나는
결혼을 몇주 앞두고부터 꽤나 심란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 정도의 감정으로 결혼까지 하나?
드라마는 다 뻥이었나? 다들 죽고 못살다가 결혼하던데?
도대체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감정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던 나는 몹시도 혼란스러웠다.
결혼이 처음이니 혼동스러울 밖에.
그래도 시계는 돌아가는 법. 결혼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그날도 남편과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1시간이나 지났을까? 자정이 가까운 시간, 남편이 전화를 했다.
잘 들어갔어?
-응
뭐해?
-전화받지.
잠깐 볼까?
-에? 쫌 전에 헤어졌는데? 무슨 일 있어?
데리러 갈게.
-응
그렇게 남편과 나는 자정이 다 돼 만나 드라이브를 하다,
양평 초입의 카페에 들어갔다.
"할말 있어."
-응(이거 결혼 앞두고, "실은 나 숨겨둔 애가 있어" 이따구 소리하는 거 아냐?) 뭔데?
"말했나? 전에 사귀던 여자가 있었다고."
-(니가 말은 안했지만 소문들어 알고 있다....이누마) 어쨌거나, 알고 있어. 10년 사귄 여자친구. 근데?
"10년이래봤자, 헤어졌다 만났다 해서, 10년까지 안돼."
-그거나 저거나. 그래서? 그런데 그게 뭐?
"전화가 왔었어. 결혼 소식 들었다고. 그리고 결혼 상대에 대해서도 알아봤다고."
-나에 대해서? 그런데?
"좀 흥분했더라고. 결혼식장에 와서.............."
-와서?
"뒤집어 엎겠다고."
얘기인 즉은 이랬다. 십년간 만나고 헤어지기를 수차례 반복. 떠났다 돌아와도 언제나 솔로였던 남편의 결혼 소식을 듣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나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남편측 얘기지만) 그래서, 펄쩍뛰며 전화를 했고, 결혼식장으로 쳐들어 가겠다...뭐 이런 얘기까지 나왔다는 거다.
-그래서? 결혼식에 와서 뒤집어 엎으면? 내가 "어무나 엄훠나 이건 사기결혼이야. 없었던 일로 해. 으흐흑" 이러면서 울며불며 부케를 집어 던지고 뛰쳐나간다? 뭐 이럴 줄 안거야? 혹시?
(실소)
좀 전까지 이런 정도의 감정으로 사람들은 결혼을 하나 혼동스러워하고 심란해했던 나는 더이상 없었다.
전투력 급상승.
-어이~~~꼭 오라고 해라이~~
"??"
-결혼할 상대에 대해서 알아봤다믄서, 아주 슬쩍 알아봤고마이~~날 아주 물로 봤어. 물로. 넌 이제 어디까지나 내꺼고, 모레 결혼식장은 내판인디. 그 판에 와서 내판을 뒤집어 엎겠다고라이~~좋은 구경 하게 생겼네. 딱 좋아. 내 스타일이야~~느그 어무니나 우황청심환 한알 드시고 오시라고 잘 전달해라이. 아주 웨딩드레스 밑단에 옷핀을 꽂을랑게" (애많은김자까 서울 태생, 원적은 TK. 그럼에도, 이런 상황에선 외가 전라도 사투리가 딱 어울림)
결혼식에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타났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소란은 없었다)
https://blog.naver.com/amilliflower(퍼옴)
그렇게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나의 첫 탄신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 탄신일 준비는 잘 돼 가고 있냐? 가계 경제를 생각해서 탄신월은 그렇고, 탄신주간으로 하자. 준비 잘하고 있지?"
"그럼, 요보~~~~탄신일 준비 잘돼 가고 있지. 1월 12일"
애많은김자까의 탄신일은 군더더기 없는1월 10일.
애많은이피디의 10년애인의 생일이었던 거다.1월 12일은.
그 후로부터 남편은. 내가
"어이, 1월 12일!!" 이라고 하면, 무릎으로 기어와서 꿇었다.
그러던 3년 전 어느날이었다.
이사를 하고 책정리를 하는데, 아주 재밌는 자료를 하나 발견했다.
난 각 방에 흩어져 있는 고1 1호부터 세살 5호까지를 죄다 소환했다.
"야아~~~~1호 2호 3호 4호 5호 튀어와"
남편은 그때까지 잠시 뒤 펼쳐질 상황을 짐작도 못한 채,
거실 소파에 모로 누워 골프 채널을 틀어놓고, 바지춤에 손을 넣고 궁댕이나 긁적이고 있었겠지?
네에~~~~~~~~~
아이들이 모였다.
난 한껏 볼륨을 높여. 얘기를 시작했다.
"엄마가 책정리를 하다, 아빠의 해묵은 책에서 아주 재밌는 걸 발견했다. 아빠가 보물인양 숨겨 놓은 이 사진."
사진 속의 그녀는 백사장 바닥에 글씨를 휘적대고 있었다. 남편의 10년애인 그녀였다.
그제서야 분위기 파악한 남편은 우당탕탕 소파에서 떨어져 빛의 속도로 안방으로 돌진했지만, 이미 늦었다.
2호 "어디 보자. 혹시 그 분이십니까? 1월 12일?"
1호 " 그 M씨 성을 가진 그분. 10년 사겼다는"
남편은 안방으로 돌진해 그대로 책더미 위로 육중한 몸을 날렸지만, 이미 늦었다. 늦었다고~애많은이피디.
2호 "아빠. 실망이네. 엄마가 만배 이쁘고만"
(이것들 잘한다아~~~)
1호 "취향은 다 다른거니깐"
(머래?)
2호 "아직도 만나세요? 1월 12일? 사진은 왜 애지중지 간직하셨슴까?"
애많은이피디 "야아~~~~~~~~~~~~~~~~만나긴 뭘 만나? 간직하긴 누가 간직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