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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쓰게 된다/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무엇이든 쓰게 된다/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위즈덤하우스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지만, 창작의 비밀 같은 것은 없을 것 같다, 고 나는 미리부터 의심했다. 과연 예측대로(?) 창작의 비밀이라고 할 건 없었다. 다만 창작에 임하는 작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작가는 창작 현장을 나름대로 성실하게 보여주었고, 독자는 그의 글쓰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사실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창작 과정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의 작품이 궁금해졌다. 어쩌면 순서가 바뀌어야 되는 일인 듯하다.


그는 자신의 창작도구들, 예를 들면 블루투스 헤드폰 BOSE QC35, BOSE 블루투스 스피커, ACE 독서대, 아트라인(Art Line)의 드로잉 시스템, 몰스킨 노트 등을 그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공개했다. 그는 자신의 사적 공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제공했다. 그가 쓰는 용품에서 그의 글들이 나오는 것일까? 설마, 그럴 리가!

아무튼 독자는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제 귀를 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뜰 때 어제 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생각하고, 소리 내어 발음해본다고, 그리고 머릿속의 백스페이스(Backspace) 버튼을 눌러 어제 쓴 글을 지워본다고 했다. 그리고 지웠던 어제의 문장을 다시 붙여 넣고, 이어서 문장을 써본다고 했다.


그의 일상은 자기가 하는 일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 창작자의 태도가 어떠한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자기가 하는 일에 일단 몰입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몰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만 가능하다는 것, 말이다.

그는 20세기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을 인용했다.


나는 그저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을 그릴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지는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나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베이컨의 말을 통해 진정한 예술가의 창작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일 것이다. 베이컨의 말을 글쓰기에 대입해서 본다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겠다.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글을 쓰려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상관하지 않겠다. 즉, 자신의 즐거움에만 온전히 몰두하겠다는 것. 이 말이 창작이라는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비장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이 글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글과 내가 완전히 일체가 될 때 비로소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다. 어쩌면 창작의 비밀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해보려는 헛된 수고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김중혁 작가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말로 에필로그를 마치겠다고 했다. G.K. 체스터튼의 말이다.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라면, 서투르게라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 말이 다 그 말 같다. 일단 하고 싶은 일을 직접 실천해보라는, 결국은 좀 진부한 진실로 글을 맺었다. 진부함 속에서 진실을 찾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것 또한 진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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