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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우울/ 앤드류 솔로몬/민음사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작가는 이 책이 극히 개인적인 것이며 그 이상의 것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우울증에 대해 먼저 쓰고 타인들의 유사한 우울증, 타인들의 색다른 우울증 그리고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의 우울증에 대해 썼다. 선진 지역이 아닌, 캄보디아, 세네갈, 그린란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문화에 따라 우울증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역적인 제한의 한계를 상쇄하고자 한 의도였다.


그는 이 책에 우울증의 시간적, 공간적 범위를 모두 담고자 애썼다. 그는 세상의 모든 불행을 근절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우울증을 완화시킨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지만 책에 담긴 지식이 사람들의 고통을 얼마간이라도 덜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울은 사랑이 지닌 결함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해 절망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우울은 그 절망의 심리 기제이다. 우리에게 찾아온 우울증은 자아를 변질시키고, 마침내는 애정을 주고받는 능력까지 소멸시킨다. 우울증은 우리의 내면이 홀로임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것은 타인들과의 관계뿐 아니라 자신과의 평화를 유지하는 능력까지도 파괴한다. 사랑은, 우울증을 예방하진 못하지만 마음의 충격을 완화하는 장치가 되어 마음을 보호해준다.



그는 소설가로서 ‘우울증’에 대한 긴 이야기를 썼다. 그 이야기들은 읽을 때마다 슬픔과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 652쪽에 이르는 꽤 두꺼운 책을 별로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는 그의 경험이 절절하게 녹아 있어서 우울증의 증상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몸의 고통에 비해 마음의 고통이 결코 덜하지 않다는 사실 말이다. 그는 수많은 자살 충동들을 이겨냈고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을 완성하는데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런 시간이 작가에게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그는 해냈고, 그는 자기 우울증을 그냥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의 수용하는 태도에서 어떤 해방감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강한 의지에 경의를 보내고 싶었다.


현대인들은 작든 크든 우울한 기분에 한 번도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울증은 현대인의 풍토병이라고까지 불리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육체의 병은 당당하게 밝히며 치료를 받지만, 우울증에 관해서는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거나 무시하면서 병을 방치해서 결과적으로 병을 키우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작가는 ‘마음의 병은 진짜 병’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육체의 병처럼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우울증에 대한 편견이 아직 너무나 만연된 분위기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게이 같은 이들도 커밍아웃을 당당하게 하는데, 우울증 환자들은 아직도 음지 속에서 병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울증은 인간이 자의식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한 이래 계속 존재해왔다고 한다. 현대 우울증의 증상은 약 2,500년 전에 히포크라테스가 기술해놓은 상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이처럼 우울증이 20세기의 현상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우울증 환자의 증가는 현대성의 결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현대사회는 예전에 비해 스트레스가 격심해서 그런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앤드류 솔로몬은 우울증에 관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울증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맺었다.


우울증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활력이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삶은 슬플 때조차도 생기에 차 있다. 어쩌면 내년쯤 나는 다시 무너질 수도 있으며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7년 전 지옥이 기습적으로 찾아오기 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나의 일부분, 영혼이라고 불러야 할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멋진 발견이었다. 나는 거의 날마다 순간적인 절망감을 맛보며, 늘 다시 무너지기 시작한 건 아닌지 걱정한다. 그리고 번개처럼 스치는 것이긴 하지만 간담이 서늘한 충동들에 젖는다. 차에 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뀔 때까지 이를 악물고 참고 서 있어야 하고, 손목을 긋거나 입에 권총을 물거나 영원히 깨지 않는 잠에 빠져드는 상상을 한다. 난 그런 감정들이 지긋지긋하지만 그것들로 인해 삶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게 되었고 살아야 할 이유들을 발견하고 그 이유들에 매달리게 되었음을 안다. 나는 지금까지의 내 삶을 한탄하지는 않는다. 나는 날마다(가끔은 투계처럼 용감하게, 가끔은 그 순간의 논리에 반하여) 살아 있기로 선택한다. 그것이야말로 드문 기쁨이 아닐까?


좀 긴 문장이다. 그렇지만 벅찬 감동 때문에 도저히 생략할 수 없어서 그냥 다 옮겨보았다. 그의 문장들 속에서는 짙은 피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자신과의 싸움에서의 이긴 자에게서 나는 뜨거운 피 냄새였다. 그는 살아남았다. 그가 살아 있기로 선택했으므로.

세상의 모든 우울증 환자들이 앤드류 솔로몬처럼 살아 있기를 선택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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