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감성 남녀 고종석과 황인숙, 두 사람의 핑퐁 같은 대화가 무척 재미있는 책이다. 그런 재미난 대화 속에서, 두 사람의 깊이 있는 성찰과 사유까지 자연스럽게 드러나니 읽는 맛까지 있었다고나 할까.
황인숙 시인이 묻고 고종석이 대답하는 대담 형식이었는데, 두 사람이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는 것을, 이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두 사람 사이에 여러 이야기들이 오고 갔지만, 특히 인상적인 내용이 있어서 하나만 얘기해보겠다.
고종석이 신영복 선생에 대해 한 말에 관한 일이었다.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고종석은 트위터에 용감하게도(?) ‘선생을 20년 이상 가둬놓은 파시스트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지만, 내가 선생의 책에서 배운 것은 거의 없다.’고 썼던 것이다. 그 글 때문에 그의 댓글창이 ‘깨어있는 시민’들과 ‘좌파’들의 욕설로 난리가 났다고 한다. 나는 고종석의 말이 ‘타이밍의 오류’였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 일로 <경향신문> 지면에 연재하던 「고종석의 편지」가 중단되어버렸다는 사실은 좀 충격적이었다.
개인적 감회를 발설했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떤 대상에 대한 맹목적인 집단의식에 대해 모종의 공포를 느꼈다. 사회적으로 공인된 어떤 강자나 유명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가 불러일으키는 파장에 대해서 말이다.
나와 다르면 무조건 비난받아야 하는 것일까? 모두가 같은 것이 과연 정의인가? 이런 일련의 일들은 성숙한 시민 의식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것은 그냥 ‘다름’ 일뿐이지 ‘틀림’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와 다른 것을 포용하지 못하는 사회는 늘 시끄러운 불화의 장(場)을 이끌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오민석이 말했듯이 ‘유쾌한 상대성’이 살아있는 곳이어야 한다.
오민석은 『경계에서의 글쓰기』에서 동질성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질성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는 공동체 내의 다양한 주장들을 철저히 배제했으며, 통합과 단결의 이름으로 ‘다른 목소리들’을 억압했다(...) 우리는 ‘화합’의 이름으로 위장된 가장 큰 ‘분열’과 갈등을 경험했다. 서로 다른 견해들인 공공 영역에서 자유롭게 부딪치는 것, 그리하여 ‘유쾌한 상대성’이 살아나며, 합당한 과정을 거쳐 사회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이다. (42~43쪽)
아무튼 이 이야기는 대화의 한 부분일 뿐이었고,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정치, 인물, 언어. 책, 대마초, 사랑, 섹스, 동성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읽다 보면, 나도 함께 앉아 얼굴을 마주하며 그 토론에 동참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진행된 대담 형식이 돋보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대화에 빠졌다.
대화는 경쾌하게 이루어졌지만, 내용은 깊이가 있었다. 그런 대화를 통해 여러 정보들을 접했고, 좋은 작품들과 작가들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얻은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정하게 혹은 티격태격 다투며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을 보며, 나도 저렇게 스스럼없이 지적인 대화, 아니 차라리 영혼의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