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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Jun 14. 2020

매화나무 아래에 서서

  -마음의 고샅길

 


  아파트 정원 바닥에 노랗게 익은 매실들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어제 비가 제법 오더니 그때 떨어졌나 보다. 
  문득 봄날에 대한 희망으로 추운 겨울을 견디어냈을 순백의 매화 송이들, 눈에 어른거렸다. 그 매화 송이들이 힘겹게 노란 매실로 맺히자마자 떨어져 버렸다. 떨어진 매실들은 버림받은 꿈들처럼 참혹했다. 저보다 더한 눈물방울들이 있으랴!
 희망은 때때로 허망하고 부조리한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삶은 왜 이렇게 가혹할까. 


  미래는 언제나 알 수 없는 것. 그러나 그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미리 절망해서는 안 된다. 다가올 위험을 염려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미리 죽음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지는 곧 죽음이다. 


 만일 매화나무가 미래의 낙과를 예측하며 꽃을 아예 피우지 않는다면, 나무는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다. 나무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봄날의 매실을 꿈꾸며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있는 힘을 다해 꽃을 피웠다. 꽃은 매실, 즉 희망이기 때문이다. 


  신화 속의 시시포스는 살아있는 모든 인간들의 상징이 아닐까. 땅 위의 시시포스인 우리들은 오늘도 미래의 언덕을 향해 현실이라는 거대한 바위덩이를 굴리며 올라간다.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 그 순간에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꼭대기에 오르자마자  바위가 금방 굴러 떨어져 버릴지라도. 그건 살아있는 자들의 엄중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살아있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몸짓이 필요하다. 그 몸짓을 이끌어내는 것이 희망이다. 비록 그 희망이 무위로 끝나버릴지라도. 


 태어나면 죽는 것이 살아있는 것들의 운명이다. 이것은 자연이 하는 일이다. 사실 우리들의 미래는 죽음을 향해 열려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미래를 꿈꾼다. 죽음을 무서워하면서도 죽음에 점점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이런 점에서 알베르 카뮈는 인간은 매우 부조리한 존재라고 했다. 


 매화나무 아래에서 오래 서있었다. 

 이제 그만 떨어진 매실들을 보내주어야겠다. 

 매화가 한 때 품었던 희망의 흔적들만 기억하며...


<아, 매실, 매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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