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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델핀 미누이 지음/더숲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시리아 내전에서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감동 실화.


이 책은 평범한 20대의 청년들이 국가의 독재로 인해 그들의 삶이 무너지는 과정과, 미래를 알 수 없는 갑갑한 일상 속에서도 책을 읽으며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저자 델핀 미누이는 프랑스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분쟁 지역 전문기자로 현재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 Le Figaro>의 현지 특파원이다.

그녀는 2015년 10월 15일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우연히 ‘시리아 사람들(Humans of Syria)이라는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그 사진은 ’ 다라야 ‘에 비밀 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다라야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에 있는 반군 지역이었다.


시리아 내전의 시작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낙서에서 비롯됐다. 2011년 3월 남부의 작은 도시 다라의 한 학교 담에 혁명 구호를 적은 10대들이 체포돼 고문을 당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는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발호하는 등 과잉 대응으로 일관했고, 이에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시리아의 민주화 시위는 알아사드 정권의 무자비한 진압이 가해지면서 점차 무장 투쟁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시리아 내전은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퇴출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에서 시작돼 수니파-시아파 간 종파 갈등, 주변 아랍국 및 서방 등 국제사회의 개입, 미국과 러시아의 국제 대리전 등으로 비하되며 수년 째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독재자 알아사드의 포탄이 수시로 터지는 위험한 상황에 있는 곳에서 도서관을 마련한 젊은 청년들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 ‘시리아 사람들(Humans of Syria)’이라는 사진을 찍은 이는 아흐마드 무자헤드였다. 그는 다라야의 비밀 도서관 공동설립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인터넷으로 저자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처참한 다라야의 현지 소식을 알려주었다. 저자는 2016년 다라야 강제이주가 시작될 때까지 약 2년 동안 이들과 연락하며 그곳 실상을 기록했다.


다라야의 젊은이들은 포탄으로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서 수천 권의 책을 구해내어 모든 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책으로 된 피난처’인 도서관을 만들었다. 이 도서관은 포탄에 맞서는 그들만의 은밀한 요새였고, 책은 대중 교육을 위한 무기였다.

아흐마드는 도서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말했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때, 우리는 저항의 상징으로 무언가를 세웠습니다(...) 우리의 혁명은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건설을 위한 것입니다.”

도서관의 공동책임자였던 아부 엘에즈는 책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수단이자 영원히 무지를 몰아내는 방법입니다.”

“책은 지배하지 않습니다. 책은 무언가를 선사해주죠. 책은 거세하지 않습니다. 책은 성숙하게 합니다.”


그리고 오마르 아부 아나스, 일명 이븐 할둔이라고 불리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혁명 이전에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던 반군 병사였다. 그는 한 손에는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 다른 한 손에는 책을 잡고 있었다.


“책은 그런 저에게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어요. 제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었죠(...) 전쟁은 역효과를 낳았어요. 사람들을 변하게 하고 감정과 슬픔, 두려움을 죽였어요. 전쟁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봅니다. 독서는 이러한 기분 대신 살아갈 힘을 줍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무엇보다 인간성을 유지하려는 것이에요.”


다라야의 젊은이들에게 도서관과 책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 수 있는 구절을 옮겨 본다.


직접 만들어낸 자유의 공간에서 독서는 새로운 토대였다. 이들은 그동안 은폐되었던 과거를 되짚어보고자 책을 읽었다. 때로는 정신착란을 피하고자, 때로는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읽었다. 책은 하나의 배출구였다. 폭탄을 동원한 일방적 강요에 맞선 언어의 선율이었다. 독서라는 이 소박한 인간적 행위는 평화를 되찾으려는 열망과 결부되었다.(42쪽)


2015년 12월 7일.

다라야 도서관은 공격을 받았다. 도서관이 있던 지하실 바닥은 책장이 무너져 책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다시 절망의 시간이 도래했다.


2016년 2월 27일.

워싱턴과 모스크바가 시리아 영토 전체에 대해 친아사드와 반 아사드 사이의 휴전을 결정했다. 도서관의 임시 휴관이 끝났다.


2016년 5월 11일.

유엔과 적십자사가 식량을 뺀 구급상자와 피임약, 혈중 포도당 검사지를 갖고 다라야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군은 백신만 반입을 허가했고, 유엔은 이들의 협박을 거부하고 되돌아갔다. 몇 분 뒤, 아홉 발의 대포가 다라야 주민이 모여서 인도주의 단체의 도착을 기다리던 곳을 덮쳤다. 그 공격은 어느 아버지와 아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2016년 6월 1일.

다라야에 인도적 지원이 처음 도착했다. 그러나 기다리던 식료품 대신 샴푸, 모기 기피제, 몇 대의 휠체어, 약품, 아이들 분유뿐이었다. 대다수 주민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정부에 협조적인 경향의 보수주의자로 간주된 유엔은 신뢰감을 완전히 잃었다.


그들은 이런 절망의 시기를 어떻게 견뎠을까? 아흐마드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된 것은 마흐무드 다르위시(Mahmoud Darwish)였다. 아랍 세계에서 극찬을 받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시인이다.


여기, 경사진 언덕에서 노을을 마주하고

세월의 간극을 넘어

막혀 있는 그늘의 과수원 근처,

포로처럼,

실업자처럼,

우리는 희망을 경작한다


(마흐무드 다르위시가 아랍어로 쓴 시 「포위 상태」를 엘리아 산바르(Elias Sanbar)가 번역(Actes Sud, 2004))


2016년 7월 29일.

아흐마드는 저자에게 오마르의 죽음을 알렸다.


“오마르가 최근에 이런 속내를 이야기했어요. 혁명이 엔지니어가 되려 했던 자신의 꿈을 막았지만, 기대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다고 말이에요. 그것은 바로 독서를 향한 문이었죠. 글쓰기로 향하는 문이기도 하고요. 오마르는 언젠가 앞으로의 세대를 위해 책을 쓰고 싶어 했습니다. 글쓰기, 그래요, 그것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글쓰기였죠. 모두를 위한 시리아. 오마르가 믿는 이상향에 대해서 말이에요.”


그러나 오마르의 꿈은 전쟁으로 부서져버렸다.

오마르의 죽음은 다라야 사람들의 삶에 전환점이 되었다. 다라야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는 것을 느꼈다.


2016년 8월 4일

정부군의 헬리콥터가 새로운 맹독인 네이팜탄을 뿌리며 마을을 급습했다. 하루 동안 수십 발의 소이탄이 거주 지역의 건물에 투하되었고, 화재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불태웠다.


2016년 8월 27일

정부 측의 밀사가 최후통첩을 보냈다. 생매장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가능한 한 빨리 다라야를 떠나라는 내용이었다. 아흐마드를 비롯해 그곳에 머물던 사람들이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다라야’라는 이름은 그렇게 생매장되었다.

저자는 아흐마드에게 물었다.

“그래서 끝났어요?”

그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물론 아니죠! 한 도시를 무너뜨릴 수는 있지만, 생각은 무너뜨릴 수 없죠!”


저자는 시리아의 젊은이들을 희망적으로 바라본다.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시리아의 이 젊은 영웅들에게 우리가 함께 나눌 불굴의 역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폭격으로 말미암은 파괴에 맞서서 이들이 구해낸 것은 책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언어를 자기 것으로 확립하고, 구문(句文)을 만들어 나갔다. 이들은 언제나 말의 힘을 믿었다. 누구도 물리칠 수 없는 힘이었다. 이들은 침묵을 깨뜨리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화의 언어를 만들었다. 책으로, 구호로, 잡지와 그래피티 그리고 창작 문학으로 이들은 군대의 수사법에 끝까지 저항하며 포격의 리듬과는 전혀 다른 리듬을 만들어냈다. 언어는 전쟁의 비열함을 초월했다. 오는 세대를 위해 갈 곳 없이 방황하던 말들을 기록했다.(223쪽)


전쟁의 포탄 속에서도 도서관을 마련하고, 그 어두운 공간에서 책을 읽기 시작한 젊은이들. 그들에게 도서관과 책은 전쟁터에서의 고난과 고통을 잊고 삶을 계속할 수 있는 희망이 되어주었다. 도서관은 다라야의 젊은이들에게 고통의 배출구이자, 희망의 출입구였다. 젊은이들은 다라야에서 뿔뿔이 흩어졌지만, 책은 그들에게 여전히 삶의 이정표가 되어줄 것 같다. 책에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힘이 있었다.


저자가 전하는 다라야 도서관 이야기를 통해서, 책은 전쟁터에서도 여전히 그 매력과 힘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책이 가장 힘을 발휘하는 곳은 그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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