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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제임스 설터 산문/마음산책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Don’t Save Anything


이 책은 작고한 제임스 설터의 부인 케이 엘드리지 설터가 설터가 잡지 등에 발표했던 글을 남편 사후에 모아서 펴낸 책이다.

책 제목이 아주 좋다. 원제 Don’t Save Anything 보다는 번역한 제목이 훨씬 멋졌다. 저번에 설터의 다른 작품 『소설을 쓰고 싶다면』을 인상적으로 읽어서 큰 기대를 했다.

그리고 책 뒷날개에 실린 손보미 소설가의 멋진 평은 가슴을 더욱 설레게 했다.


그런데 내가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일까? 실망이 꽤 컸다. 기대한 만큼 실망했다고나 할까. 작가의 미발표 원고도 아니고, 이미 여러 곳의 잡지에 발표한 것을 왜 다시 발표했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상업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추측해보지만, 진의는 모르겠다. 출판사 <마음산책>에서는 『소설을 쓰고 싶다면』에 대한 반응이 괜찮은 편이어서 이 책을 출판했을까?


제임스 설터의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그는 1988년 펴낸 단편집 『아메리칸 급행열차』로 펜/포크너 상을 받았다. 2012년 펜/포크너 재단이 뛰어난 단편 작가에게 수여하는 펜/맬러머드상을 받았고, 2013년에는 예일대에서 제정한 윈덤캠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분명 뛰어난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업적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러니까 그 어떤 위엄에 기대지 않고 순수하게 내 힘으로 읽어낸, 이 책에 실린 그의 산문들은 내게 어떤 감동도 주지 않았다. 아쉽게도 그와 나 사이에 화학적인 스파크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책과의 만남도 사람과의 만남과 비슷한 모양이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다 좋아할 수 없듯이 말이다.


물론 책은 취향과 상당히 관련이 있다. 내가 인상적으로 읽은 책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인상을 준다는 보장은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적극적으로 추천한 책이라고 해서, 내가 그 책을 꼭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굳이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겠다. 그렇지만 『소설을 쓰고 싶다면』을 읽은 독자는 그 책만큼의 만족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 책에서 유일하게 건진 글은 <나는 왜 쓰는가>였다. 그렇지만 그 글은 이미 읽은 책 『소설을 쓰고 싶다면』의 일부였을 뿐이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이 책에서 새롭게 얻은 것은 별로 없었다. 이 책에서 그나마 기억할 만한 글들을, 얼마 되지는 않지만, 정리해봤다. 그 문장들은 아래와 같다.



생각건대 내 안에는 글쓰기가 다른 일보다 훌륭한 일이라는 믿음이 늘 잠복해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결국에는 글쓰기가 더 훌륭하다는 게 입증되리라는 믿음이. 미망이라 해도 상관없지만, 나의 내면에는 우리가 했던 모든 것이, 그러니까 우리 입 밖으로 나온 말들. 맞이한 새벽들, 지냈던 도시들, 살았던 삶들 모두가 한데 끌려들어 가 책의 페이지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고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린다는, 존재한 적도 없게 되고 만다는 위험에 처할 테니까. 만사가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때가 오면, 오직 글쓰기로 보존된 것들만이 현실로 남아 있을 가능성을 갖는 것이다. (27쪽)



랠프 월도 에머슨은 문학의 쓸모란 우리 현재의 삶에 대한 관점을, 우리가 거기에 디디어 움직이는 버팀목을 얻을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것이라 썼다. 아마 이 말은 진실이겠지만, 나는 더 폭넓은 측면에서 힘주어 말하고 싶다. 문학은 문명의 강이다. 티그리스와 나일 강처럼 말이다. 그 강을 따라가는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오로지 그들만이 세속의 영광을 무심히 지나치는 이들이라고. (28쪽)



위대한 소설은 아마도 우연의 산물이겠지만 좋은 소설은 가능성의 영역에 속해 있고, 작가는 글을 쓰며 그 가능성을 생각한다. 간단히 말해, 좋은 소설은 이룰 수 있는 목표다. 나머지는 책이 알아서 한다. 정말로 많은 찬사가 대단찮은 것들에 쏟아지니, 찬사를 받으려고 애써봤자 별 의미가 없다.
결국 글쓰기란 감옥, 절대 석방되지 않을 것이지만 어찌 보면 낙원인 섬과 같다. 고독, 사색, 이 순간 이해한 것과 온 마음으로 믿고 싶은 것의 정수를 담는 놀라운 기쁨이 있는 섬.(29쪽)


내가 묘사할 수 없는, 아마 사람들도 각자 다른 관점과 시대에서 다양하게 바라보고 있을, 이른바 진정한 삶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면에서 그 삶은 여행이고, 어떤 관점에서는 여성이며, 또 어떤 견지에서는 죽을 때까지 경탄할 수 있을 경치를 끼고 있는 집일 것이다. 진정한 삶이란 돈과는 멀어진 삶, 야망을 옆으로 제쳐놓은 삶, 어떻게 해서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삶이다. 그런 삶이 언제까지나 지속되지는 않지만, 그 삶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그렇게 산 탓에 가난해지는 경우는 보통 없다. (386쪽)


언어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세계의 아름다움과 존재의 아름다움, 혹은 원한다면 세계의 슬픔과 존재의 슬픔도 있겠지만, 언어 없이 그것들을 말로 나타낼 수는 없다. (423쪽)


언어의 풍성함 속에, 언어의 우아함, 폭, 재주 속에 힘이 있다. 분명하게, 간결하게, 위트 있게 말하는 건 피뢰침을 쥐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만사를 알고 그걸 표현할 수 있는 사람에게 끌린다.(424쪽)


누군가를 작가가 되도록 부추기는 것, 혹은 그랬던 것이 바로 독서에서 비롯된다. (424쪽)

이 책을 접하면서 책 제목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제목은 글쓰기에 대한 멋진 환상을 품게 했다. 결과적으로는 제목과 내용이 상당한 괴리가 있어서 실망을 하게 되었지만. 물론 나 혼자만의 실망이면 좋겠다.


제목과 관련해서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최근 몇 년 동안 베스트셀러 상위 목록에 꾸준히 올라온 책들이 있었다. 유명한 작가가 쓴 산문집도 아니었는데 꽤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그 인기의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려고 했지만, 꽤 오랫동안 예약대기가 되어 있어서 예약을 할 수조차 없었다. 그만큼 인기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우연히 그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헛웃음이 나왔다. 오랜 시간 동안 궁금해하며 읽고 싶어 했던 그 시간들이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내용 자체를 떠나서 비문들이 제법 많아서 책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쓸데없는 미사여구들도 눈에 거슬렸다. 그런 책이 베스트셀러 상위 목록에 장기 집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역시 내 취향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무튼 생각보다 내게 맞는 양서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일간지에서 주말에 추천하는 신간들을 보고도 실망한 적이 많았다.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해서는 꽤 시간이 걸린다. 일일이 내가 직접 읽어보지 않아도, 누군가가 양서를 추천해준다면 시간 절약이 될 것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리 단순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독자의 취향이나 수준이 각각 다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은 스스로 책과 만나서 충분히 소통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할 것 같다. 누군가가 선택한 사람을, 진실한 내 친구로 바로 받아들이기 힘들 듯이, 책도 내가 직접 만나서 부딪히고 오랜 대화를 해야만, 그 책이 비로소 내 가슴속의 의미 있는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No pain, No 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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