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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류시화/더숲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류시화의 책은 비교적 술술 읽힌다. 그렇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늘 생각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그의 작품의 미덕이다.

이번 산문집도 예전 작품들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그렇다고 감동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가에 대한 기대와 믿음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작품이 나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한은.

그의 글과 번역 작품은 주로 삶에 관한 성찰에 대한 것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곁에 두고 반복해서 읽어도 처음 읽을 때의 감동이 줄어들지 않는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서도 되새기고 싶은 글들을 많이 만났다. 글이 쉬우면서도 깊이가 있으니 가성비가 좋은 편이다. 물론 책도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호도가 많이 다르겠지만.


되새김할 만한 인상적인 글귀들을 옮겨본다.






이 삶에서 진실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축복할 수 있으므로. 당신과 나, 우리는 어차피 천재가 아니다. 따라서 하고 또 하고 끝까지 해서 마법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다. (70쪽)


- 삶을 살아가는데 꼭 기억해두고 싶은 글이다. 단순하지만 삶의 지표가 될 만한 글.



라틴어에서 레푸기움은 ‘피난처, 휴식처’의 의미이다. 원래 레푸기움은 빙하기 등 여러 생물종이 멸종하는 환경에서 동식물이 살아남은 장소를 말한다. 빙하기 때 살아남은 생물들처럼 자신의 존재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레푸기움인 것이다. (82쪽)



자신만의 레푸기움, 자신의 탑을 갖는 일은 중요하다. 그곳이 돌집이든 소나무 숲이든 바닷가 외딴곳이든, 주기적으로 찾아가 분산된 감각을 닫고 자신의 영혼에 몰두하는 장소를 갖는 일은, 그것은 떠남이자 도착이다. 그곳에서 당신은 다른 사람이 되기를 멈추고 오로지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자신의 본얼굴을 감추느라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자신의 레푸기움에서는 타인을 위해 표정을 꾸밀 필요가 없으며, 외부의 지나친 소란으로부터 자신의 영혼을 지킬 수 있고, 당신을 움켜쥐었던 세상의 요구에서 벗어난다.(86쪽)


- ‘레푸기움’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접했다. 자신만의 레푸기움을 가진 사람은 자기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삶을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참다운 자아를 지속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지는 이유는 단순히 그 사람이 좋아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좋아지고 가장 나다워지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를 멀리하고 기피하는 이유는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싫어지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101쪽)


-결국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말은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가장 나다워지는 대상과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붙잡으려고 하는가? 떠나는 것은 떠나게 하고, 끝나는 것은 끝이게하라. 결국 너의 것이라면 언젠가는 네게로 돌아올 것이니. 고통은 너를 떠나는 것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네 마음에 있다. 놓아 버려야 할 것들을 계속 붙잡고 있는 마음에. (244쪽)


-삶에서 쓸데없는 집착을 버리는 것,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집착이 자신의 고통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집착 또한 버려야 할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깨달음은 결코 일회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살아가는 동안 무수한 깨달음과 망각 사이를 왕복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삶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내용이 단순하지만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영혼의 비타민 같다고나 할까.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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