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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눕(Snoop)/샘 고슬링 지음/한국경제신문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스눕'의 사전적인 뜻은 아래와 같다.


Snoop [snu:p] vi. vt.

1.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 2. 꼬치꼬치 캐다


이 책 저자인 샘 고슬링은 위에서 뜻하는 본래의 의미에다 ‘직감을 넘어 과학적으로 상대를 읽다’라는 의미를 추가했다.

그는 ‘인트로’에서 ‘당신의 흔적이 당신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면서 스눕에 대한 재미있는 예를 보여 주었다.


그는 어느 날 페덱스 소포 상자를 받았는데, 특이하게 그 상자 뚜껑에는 ‘열지 마시오’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음성사서함 지시사항에는 미리 정해진 시간에 상자를 여는 장면을 비디오로 녹화하라고 했다.

그 상자 안에는 어떤 사람의 욕실에 있던 물건들이 들어있었는데, 머리빗, 작은 튜브형 스킨 크림, 음악 CD, 욕실 세면대 주변이 찍힌 폴라로이드 사진이었다. 의뢰인은 그 물건들의 소유자에 대한 것을 추측해서 알려달라고 했다.


저자는 머리빗 사이에 끼여 있는 머리카락이 짧고 뻣뻣하고 검은 색인 것을 보고, 물건 소유자가 아시아나 히스패닉계 사람으로 추측했다. 스킨 크림은 중간부터 눌러 사용했고 뚜껑에는 찌꺼기가 딱딱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CD는 흔히 게이클럽에서 많이 틀어주는 장르였다. 저자는 이것을 보고 물건 소유자가 남자라고 확신했고, 외모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물건 소유자가 20대 초반이나 중반의 아시아 남성이며 게이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실제 소유자는 30대 초반이었다. 나이 빼고는 대부분은 저자의 추리가 맞았다.


상자를 보낸 사람은 TV 방송국 프로듀서로 리얼리티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위의 예를 보면 꼭 추리소설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개인의 소지품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숨겨져 있었다. 저자의 추리 방식이 탐정들의 추리 방식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았다.

한 예를 통해서 본 것이긴 하지만, 심리학이 단순히 직관에 의존하는 학문이 아닌, 과학적인 학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이 TV 방송 프로그램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자신이 차지하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각자 다른 형태로 행동의 발자취를 남기게 되는지 그 차이점을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랐다. 또한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다른 논쟁자들이 한 가지 단서에 근거해 성급히 결론을 내리거나, 쉽게 주목을 끌게 마련인 사실들로 인해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따위의 흔한 판단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내가 올바로 이끌어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안락의자의 점성술이나 디너파티에서의 꿈 풀이처럼, 심리학의 과학성을 폄훼하지 않으며 해낼 수 있기를 희망했다. (17쪽)


그는 방송이 끝나고 나서 이 책을 쓰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내 연구의 도전과제(요컨대 이 책 ≪스눕≫이 제시하는 바와 같은)는 누구나 맞닥뜨리게 되는, 우리가 사는 환경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물로부터 의미를 유추하려 한다. 물론 자신이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척 자연스럽고 너무 쉽게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각종 정보 ( 헤어스타일, 거실 벽에 걸린 지도, 처음 꺼낸 말 한마디, 악수할 때 손에 힘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등)를 종합해서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확립하는 과정을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이 현상은, 사실 내면의 매우 복잡 미묘한 심리학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18쪽)


1장. <타인의 흔적을 알아채는 기술>


소지품과 물건이 성격을 반영하는 3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1. 우리는 소지품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2. 우리는 자신의 물건에 감정을 담는다

3.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공간에 흔적을 남긴다


2장. 오션즈 파이브: 5가지 성격 유형


5대 성격 유형 분류체계에서 말하는 5가지 유형은 ‘개방성(Openness)’, 성실성(Conscientiousness)’, 외향성(Extroversions)’, 동조성(Agreeableness)’, 신경성(Neuroticism)’이다. 순서대로 각 성격 유형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따면 ‘OCEAN(대양)’이라는 단어가 된다.

5대 성격 유형을 정확히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은 사람들의 성격과 성격 사이의 차이를 식별할 때 꼭 필요하다.


3장. 스누핑이 필요한 순간


어떤 사람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처음 안면을 튼 단계에서 그다음 단계로 건너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그래서 상대방에 대한 세부 정보를 파고 들어간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반드시 그 사람과 가까워지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어떤 사람에 대해 알아간다는 일이 친밀감을 높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낭만적인 애정 관계이든 아니든, 관계에 대한 연구들은 ‘여러분을 알아가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108쪽)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알 수 있게 되는 스누핑의 과정이 무척 흥미로워 보인다.


4장. 의미 있는 단서만을 골라내는 방법


저자는 스누핑 연구가 매력적인 이유는 특정 단서가 특정 성격을 가리키는 따위의 완벽한 해답이 없어서라고 했다. 그는 단서들의 출처에서부터 단서를 찾기 시작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즉 단순히 단서 그 자체만을 두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단서의 출처에 대해 깊이 있는 탐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감정에 대한 단서와 직관까지 동원해서 스누핑을 해야 한다고 했다. 스누핑이 올바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꽤 복잡한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장. 골라낸 단서를 구체화하는 통찰의 기술


여기에서는 다양한 예가 많았다.

자동차를 통해서 본 예들이 특히 흥미로웠다. 불안정하고 겁이 많은 운전자는 침착하고 느긋한 사람들보다 브레이크 패드가 빨리 닳는다고 했고, 범퍼 스티커 같은 장식품들이 외부 지향적이거나 내면 지향적인 자기 정체성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고도 했다.

그리고 이메일 ID를 통해서도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사람과 심각한 내성적인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무심코 정한 ID에도 개인의 성향이 드러난다고 하니 무척 흥미롭다.


6장. 스누핑을 방해하는 가짜 단서들


명백하게 우리가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은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보다 꾸며내기가 훨씬 쉽다. 그렇기에 자기 정체성 주장은 위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크다(...) 기독교의 상징인 물고기 기호를 자동차 범퍼에 붙이고 다닌다면 그것은 내가 의도한 바를 명백하게 전달할 것이다. 하지만 행동양식의 흔적을 위장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행동하는 과정에서 발행하는 부주의함의 결과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뤄진다. 만약 내가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급한 와중에 창문 블라인드를 올리고 나간다면 블라인드가 수평으로 잘 올라갔는지 신경 쓰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블라인드를 올려서 방에 햇빛이 들어오게 하려는) 내 행위의 목적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지, 그 행위에 의해 발생한 결과(비뚤어지게 올라간 블라인드)에 신경 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208~209쪽)


이처럼 자기 정체성을 숨기기는 매우 어렵다는 지적에 공감을 하게 된다. 결국 완벽한 위장은 힘들다는 것. 어떤 부분에 한해서는 위장을 할 수 있지만, 전체를 완벽하게 위장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7장. 고정관념이라는 착각


고정관념이나 정형화는 특정한 것들을 직접 경험한 적이 없을 때 그것(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가정으로서 그것이 얼마나 일반적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이런 고정관념은 인상을 형성하는 상황에서 수많은 방식으로 얼마나 자주 사용되고 있는지 모른다. (231)


이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이 있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심리학자 로버트 레바인(Robert Levine)은 세계 여러 나라 31개국 사람들의 일상에서의 생활 속도를 비교하기 위한 비밀 조사원들을 고용했다. 이 실험을 통해 몇 가지 기본적인 패턴이 드러났다.

생활 속도가 국가들의 많은 다른 특성들과 관련이 있었다. 생활 속도가 빠른 나라들은 날씨가 추운 경향이 있었고, 경제적인 생산성이 높았으며, 흡연자의 비율이 높았고,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도 높았다. 참고로 1위는 스위스, 2위는 아일랜드, 3위는 독일이었고 대한민국은 18위, 멕시코는 31위였다.


물리적· 문화적 환경은 활동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러므로 거기 사는 사람들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235쪽)


환경은 지역적인 정형화에 대해 단지 일부분만을 설명해줄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얼마만큼 유동적일 수 있는지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235~236쪽)


여러 환경의 영향이 자연스럽게 고정관념을 형성하고, 고정관념은 어느 정도까지는 타당성이 있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종종 특정한 요건과 개별적인 이유로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8. 옳은 판단이 잘못된 판단이 되는 이유


저자는 심리학 박사 과정에 응시한 학생들을 선발할 때, ‘캐시’라는 우수한 학생을 면접관들이 나쁜 점수를 줘서 탈락시켰다. 그는 이런 경험을 통해, 옳은 판단이 잘못된 판단이 되는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얼룩점 분석을 시도했다.(*303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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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점 분석>


얼룩점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의 성격에 대해 정확히 판단한 것이다. 이 얼룩점 분석은 각각의 연구를 따로 떼어놓고 봤을 때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총괄적이고 전체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302쪽)


저자는 어떤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어디를 살펴보아야 할지 결정해야 할 때 이 얼룩점들을 참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얼룩점들을 참고했다면 캐시의 개방성과 동조성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9장. 올바른 통찰을 가로막는 5가지 함정


최고의 스누핑은 비록 과학에 뿌리를 두긴 했지만 그 자체로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스누핑에 통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몇 가지 주의해야 할 함정들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충분히 훈련받지 않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할 수 있는 함정들 말이다. 초부자들이 빠지기 쉬운 5가지 함정이 있다. (305쪽)


1. 첫인상은 강력한 함정이다

2. 엉뚱한 단서에서 의미를 유추한다

3. 상관없는 단서를 활용한다

4. 틈새에 맹점이 있다

5. 아는 만큼만 보인다


여러분이 스누핑을 하지 않는 때라 할지라도,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매번 여러분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전문성을 가질 수 있는 영역이 (아주 조금씩이지만) 확대되기 때문이다.(329쪽)


다양한 질문을 함으로써 그 사람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고, 상호 소통의 범위가 넓어지면 스누핑의 정확도는 당연히 더 좋아질 것이다.


10장. 그 사람의 참모습을 알아간다는 것


저자는 2006년 ABC 방송국의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의 프로그램 진행자 ‘찰스 깁슨’과 ‘마이크 바즈’의 TV 스튜디오 사무실을 조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스누핑을 하게 됐다. 그는 생방송 중에 그가 발견한 사실들을 소개해야 했지만, 일정상 직접 사무실을 방문해 사전 조사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사무실을 촬영한 사진들을 토대로 분석해야만 했다. 그는 그들의 사무실에 배치된 물건 등 실내 인테리어를 통해서 그들의 성향을 분석했다. 그리고 잠깐 동안 그들을 만났을 때 저자와 그들이 한 악수의 세기, 악수할 때의 그들의 시선의 방향까지 분석한 후에 그들에 대한 스누핑을 정리했다.


외향성이 높은 사람들은 사회적이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 경향이 있으며, 친교에 대한 욕구가 낮은 사람들보다 가까운 친구들이 더 많고 사회 활동도 더 활발하다. 이들은 또한 동조성도 더 높고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나는 아주 짧은 만남을 통해서도 바즈와 깁슨 사이에 이런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핵심적으로 친교의 욕구가 강한 사람들은 이러한 욕구가 낮은 사람들보다 혼자 있어야 할 때 훨씬 불행한 감정을 느낀다. (352쪽)


11장. 스누핑의 진정한 매력


저자는 ‘트라비스’라는 건축가가 설계 과정 초기에 사람들의 성격을 사전에 파악해서 집주인에게 맞는 집을 디자인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이런 기술은 일반적으로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데, 사람들과 공간 사이의 특유한 심리학적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냉장고에 항상 강박적으로 와인, 샴페인, 사과주, 큰 물병과 맥주 여유분을 가득 채웠다. 그렇지만 정작 본인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트라비스를 통해 비로소 그의 이상한 음료수 보관 습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어릴 때 할머니 집에서의 경험을 떠올렸다.


트라비스를 통해 나는 우리가 물리적 공간에서 구하고자 하는 만족감에 대한 특별한 욕구가 어떻게 과거의 경험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357쪽)


심리학에서는 스누핑을 통해서 개인의 성향을 분석했다. 그런데 건축가 트라비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개인의 성향을 분석해서 그 사람의 거주 공간을 설계했다. 트라비스는 스누핑을 좀 더 넓은 실용적인 영역으로 확대한 셈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스누핑이 앞으로 어디까지 적용될 것인지 몹시 흥미롭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행동이나 습관이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오는 동안의 경험과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책에서는 무수한 실례를 들어 보였지만 너무 많아서 다 옮길 수는 없었다. 스누핑은 인간 이해를 목표로 하는 심리학 분야에서 꼭 필요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들은 스누핑을 통해서 상대방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상호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생활현장에서 스누핑을 하면 좀 더 원만한 대인관계를 맺을 수 있겠다.

스누핑은 타인에 대한 이해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해 주는, 제법 실용적인 방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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