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메리 앤 셰퍼 & 애니 배로우즈 지음/매직하우스
서간체 형식의 소설이어서, 처음에는 내용이 금방 이해가 되지 않아서 좀 혼란스러웠다.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도 없이 편지글로 바로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서히 이야기의 재미에 푹 빠지게 되었다. 오랜만에 이야기가 주는 순수한 즐거움을 맛보았다. 현대 소설의 특징인 상징과 비유가 거의 없어서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의 격이 떨어진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이 책은 2008년 아마존과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2018년에는 영화로 개봉되었다. 소설의 내용이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메리 앤 셰퍼는 평생 도서관과 서점에서 일했고 지역신문의 편집을 맡았다. 그녀는 우연히 들은, 건지 아일랜드에 흥미를 느껴 그 섬에 직접 들렀다. 그런데 엄청난 안개 때문에 런던으로 빨리 돌아가지 못하고 섬에서 며칠 동안 머물게 되었다. 그때 건지 아일랜드에 관한 책을 발견하고 그 섬에 관해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20년 후 그녀는 자신이 속해있던 독서클럽 친구의 격려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2007년 초안은 완성되었지만, 메리의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메리는 조카인 애니 배로우즈에게 마무리를 부탁했다. 이 책은 메리의 데뷔작이자 유작이 되어버렸다. 이 책을 쓰게 된 배경 자체가 하나의 소설처럼 흥미로웠다.
소설의 무대는 1946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의 건지 아일랜드이다. 건지 아일랜드는 영국의 남단과 프랑스 노르망디 사이 채널 제도에 있는 섬으로, 영국 왕실 소유의 자치령이다. 세계 2차 대전 때 나치 독일이 이곳을 5년이나 점령했다. 그동안 건지 아일랜드는 외부와 차단된 채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 소설은 전쟁이라는 어려운 시기를 ‘감자 껍질 파이 클럽’이라는 독서모임을 중심으로, 섬사람들이 나눈 아름답고 소중한 인정(人情)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줄리엣 애쉬튼은 작가인데, 어느 날 건지 아일랜드의 도시 애덤스라는 남자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줄리엣이 보던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집>을 중고 서점에서 사게 된 도시는, 그 책에서 우연히 줄리엣의 주소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찰스 램의 다른 작품을 구할 수 있는 런던 서점을 좀 알려달라고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줄리엣과 도시는 편지로 계속 연락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줄리엣은 건지 아일랜드의 감자 껍질 파이 클럽이라는 독서모임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는 그 독서모임에 관한 글을 쓰고 싶어 했고, 마을 사람들의 허락을 받고 건지 아일랜드를 방문한다.
줄리엣과 도시를 연결한 것은 찰스 램의 책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감자 껍질 파이 클럽을 주축으로 전쟁이라는 어려운 시기를 견뎌냈다. 독서모임 사람들은 처음에는 모두 책하고는 무관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이 모임을 계기로 그들은 책을 읽기 시작했고, 자신들만의 시각으로 문학작품을 논했다. 작가들은 세네카, 셰익스피어, 찰스 램, 브론테 자매, 제인 오스틴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줄리엣은 아주 현대적이고 용감한 여성이다. 그녀는 수줍음을 타는 남자 도시에게 먼저 프러포즈를 한다. 소설은 두 사람의 결혼으로 끝나는 해피엔딩이다.
이 책은 책과의 인연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 속에는 로맨틱 코미디가 갖는 웃음과, 전쟁의 상흔이 갖는 슬픔이 공존했다. 오랜만에 이야기의 맛을 제대로 느꼈던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편지를 통해 인연이 맺어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고 아름다웠다. 우리도 80년대까지만 해도 종종 편지를 썼다. 그런데 인터넷의 발달로 편지는 이메일로, 그리고 스마트 폰의 출현으로 이메일은 다시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톡이라는 전달 수단으로 변했다.
지금 우리는 LTE의 빠른 속도로 전달되는 수단을 가졌지만, 사람들과의 인정은 오히려 더 메말라 가고 있는 듯하다. 기술의 발전과 반비례해서 사람들 간의 따스한 정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 기술의 발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편지로 우정과 사랑을 나누던 그 시절이 몹시 그립다. 그때가 인간미 있는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듯하다. 책을 읽으며 잠시 과거의 향수에 젖을 수 있었다. 독서의 즐거움이 이런 데 있는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