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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Apr 07. 2021

단발머리 소녀, 담배, 그리고 코로나 19

-마음의 고샅길



장 보러 가는 길이었다. 집 주변 벤치에서 등을 돌리고 한 소녀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중학교 일 이학년 정도 되어 보였다. 소녀는 단정한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고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내가 지나가는 기척을 느꼈는지 소녀는 황급히 담뱃불을 끄고는 자기가 사는 아파트 건물 쪽으로 잰걸음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담배를 피우다가 많이 놀란 듯했다. 


 소녀가 떠난 벤치 아래에는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었다. 그 옆으로는 하얀 목련 꽃잎들이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다. 단발머리 소녀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뒷모습이 청초한 흰 목련 같았다. 이상하게 안타까웠다. 

바닥에 떨어진 목련 이파리와 소녀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내가 가고 있던 방향에 소녀의 아파트 동이 있어서 무심코 그 소녀의 행동을 보게 되었다. 소녀는 현관 출입문 입구에 부착된 번호판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너무 급하게 눌러서 번호를 잘못 입력했는지 계속 에러가 났고 문이 열리지 않았다. 소녀가 다시 서너 차례나 비밀번호를 누르고서야 겨우 문이 열렸다. 나 때문에 어지간히 놀란 듯했다. 


 저 어린 나이에 왜 담배를 피우게 되었을까? 단순히 호기심 때문일까? 무언가에 대한 반항일까? 아니면 세상살이 스트레스 때문일까? 저 나이에 벌써?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봤지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 흡연을 하면 요즘처럼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릴 때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코로나 19 위험군에 흡연자를 추가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마트로 향했다. 


 주민 센터 앞을 지날 때였다. 코로나 19 예방을 위한 분무기와 소독약품 대여해 준다는 안내 글이 있었다. 좀 전에 봤던 소녀가 다시 생각나서 실없이 웃었다. 요즘은 모든 이유가 코로나에 귀속이 되는가 하고서...



<담배꽁초 옆에 떨어진 하얀 목련 꽃 이파리들>




*작년 사월, 브런치 작가에 응모했던 글... 어느새 일 년이 다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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