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시작 /바버라 애버크롬비/책읽는수요일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요즘처럼 날씨가 계속 흐리고 꿉꿉한 날에는 마음을 다독여줄 도피처가 필요하다. 내가 가장 손쉽게 닿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책이다.


바버라 애버크롬비의 「작가의 시작」에서는 글쓰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여러 작가들의 멘트가 눈길을 끌었다. 작가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낯설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겪게 마련이며,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실존 인물이든 허구 속의 인물이든 다른 이들이 힘든 시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이다.



그녀의 말에 동의를 하면서 계속 책장을 넘겼다. 인상적인 글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줄표가 표기된 인용문에서, 줄표 위의 글은 작가의 글이고, 줄표 아래의 글은 다른 작가의 글이다. (작가 표시가 따로 없는 글은 애버크롬비의 글이다.)



독서나 글쓰기에 집중하는 일, 자신의 내면에 접속하는 일은 벨소리와 경적 소리로 가득한 현대 생활을 완전히 거스르는 일이다. 이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고요하게 침묵하는 것은 오싹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두려움이 어느 정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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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뿐만 아니라 진지하게 독서를 할 때에도 고요한 곳으로 가야 한다. 그곳은 실제로 분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곳, 통제할 수 없는 무서운 세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곳이다.

-조너선 프랜즌 (119쪽)




책을 읽지 않는 건 진공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이다. 독서는 영감을 얻기 위해, 자료를 얻기 위해, 기분 전환을 위해, 본보기로 삼기 위해, 자신이 글을 쓰는 본질적인 이유를 상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작가는 책을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왜 글을 쓰겠는가?) 내가 아는 작가들은 모두 넘쳐나는 책을 주체하지 못해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나는 진짜 책의 냄새와 느낌을 좋아한다. 감사의 말에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다. 헌사와 추천의 말, 작가의 예전 저서들, 심지어는 찾아보기도 즐겨 읽는다. 나는 실제로 책을 읽기 전에 한동안 그 주위를 맴돈다. 수업을 할 때에는 메모가 적혀 있고, 포스트잇이 화려하게 붙어 있는 종이책이 내 손안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행할 때는 전자책도 좋다. 인도에 갈 때 열네 권의 책을 전자책으로 가져간 덕분에 내 짐도 이번만큼은 감당할 수 있는 무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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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책을 읽다가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을 쓰겠다는 충동을 자극하는 것은 대개 독서이다. 독서, 독서에 대한 사랑이 바로 작가의 꿈을 키워주는 것이다.

-수전 손택 (186쪽)



자신의 삶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개 에너지를 전부 소진할 만큼 도전적인 목표, 삶에 의의를 부여할 수 있는 목표를 갖고 있다.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206쪽)




가끔은 글을 쓸 수 없을 만큼 현실에 압도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일은 메모뿐이다. 나 역시 메모를 했다. 수십 권의 일기를 쓰고 수십 장의 메모를 했다. 내 문제는 맥락을 찾는 일이었다. 그 모든 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그것은 단순히 엄청난 경험일 뿐이었다. 아니, ’단순히‘라고 말할 수 없는 엄청난 경험이었다.


베아트리체 우드는 40세에 도예를 발견해 인생을 바꿨다. 예술가가 된 것이다. 그러다 80대 후반에는 작가가 되어 많은 책을 출간했다. 그중 하나는 노력과 깊은 영적 모험, 격렬한 연애, 달콤한 가십 등을 다룬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회고록이다. 나는 그녀가 104세였을 때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실크 사리와 묵직한 액세서리를 걸친 채 여전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녀는 매일 작업실에 가서 예술 활동에 매달렸다.
그녀는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밤이 되면 나는 침대에 누워 다음 날 작업실에서 할 일을 계획한다. 내가 만들 그릇들, 잔들, 타일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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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예가로서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나 자신을 도예가로 단련시킨 것이다.······나는 아주 열심히 노력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노력뿐이다. -베아트리체 우드 (335쪽)




윗글 이외에도 많은 글들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독서와 글쓰기는 같은 뿌리를 가진 나뭇가지들 같다. 독서와 글쓰기는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삶을 살아가는 동안 적지 않은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손만 뻗으면 쉽게 닿을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그리 쉽지는 않다.

책을 읽다 보면 자기 성찰을 하게 되고, 또 자기 성찰은 글쓰기에 이르게 한다. 책 읽기는 선순환을 일으키는 멋진 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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