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책을 읽기 시작해서 다 읽을 때까지 한 가지 주제, '부조리'에 대해 생각했다. 도대체 '부조리'란 무엇일까?
책에서 이런 구절이 있었다.
그(인간)는 자신이 시간에 속한 존재이고, 또한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이 공포, 바로 거기에 자신의 최악의 적이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만다. 내일, 자신의 전 존재가 거부했어야 마땅한 그 내일을, 그는 내내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육체의 반항, 이것이 바로 부조리다.
이 구절에 관해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았다.
인간은 시간을 초월할 수 없는 유한한 생명체다. 미래의 어느 순간에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인간은 내일을, 미래를 계속 기다린다. 살고자 하면서, 결국 죽음을 기다리는 인간은, 그런 점에서 부조리한 존재라는 것.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죽기 마련이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카뮈의 시선에서 보면 자연이 매우 부조리한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처한 상황 자체도 부조리한 것일 수밖에 없다. 부조리한 인간이 부조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카뮈는 신화 속의 인물 시시포스를 통해 부조리에 저항하는 삶의 방식을 보여주려 한다.
시시포스는 거대한 바위를 굴려서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지만 그 바위는 꼭대기에 닿는 순간, 아래로 굴러 떨어져 버린다. 그렇지만 시시포스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바위를 굴려서 올린다. 아무 의미도 없는 행위를 끝도 없이 반복한다. 이런 시시포스의 행위는 사실 인간의 삶을 은유한다.
지상 위의 시시포스인 인간들은 미래의 언덕을 향해 현실이라는 거대한 바윗덩이를 굴리며 올라간다. 꼭대기에 오르자마자 금방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밀어 올리며,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 그 순간에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건 살아있는 자의 의무이다.
살아있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몸짓이 필요하다. 그 몸짓을 이끌어내는 것이 희망이다. 비록 그 희망이 무위의 것으로 끝나버릴지라도, 지금은 지금의 몸짓을 해야 한다. 멈춤은 곧 죽음을 뜻하므로.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바로 자살이다. 삶이 고생해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카뮈는 자살은 부조리한 삶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회피일 뿐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죽으면 부조리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시시포스의 행위를 통해 우리의 삶을 바라보게 한다. 일반적으로 우린 시시포스의 삶을 형벌의 삶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카뮈는 저항을 통해 삶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그의 전복적 사고방식의 탁월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그는 카프카의 작품을 통해 부조리한 삶에 대한 예시를 보여주기도 했다.
카뮈는 약관 28세의 나이에 이 시론을 썼다. 그런데 독자는 이 작품이 너무 어려웠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도 이해하는 정도가 너무나 빈약함을 느꼈다. 부분적으로 이해되는 구절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뚜렷하게 윤곽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처한 현실의 부조리함이라고나 할까.
철학은 보통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쳐버리거나, 아예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대상에 대한 집요한 탐구인 듯하다. 나는 그 미지의 대상 앞에서 그저 머뭇거리거나 눈먼 자의 손으로 한없이 더듬어 보려 애썼다. 그렇게 더듬다 보니 어떤 것이 만져지긴 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선명하게 알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내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대상을 만났고, 또 그 대상에 대해 나름대로 천착도 해보았다. 그 결과 내 의식의 영역을 조금은 확장시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책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꽤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철학이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보상 방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