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우치다 다쓰루/원더박스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우치다 다쓰루는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에서 '외국어 습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타자에 동기화하는 것, 그것을 통해 기존의 자아를 일단 해체하고 좀 더 복잡하고 정교한 자아로 재편성하는 것이다.


나는 그가 말한 '외국어 습득'을 '책'으로 바꾸어서 생각해보았다. 책을 읽을 때 어떤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그 세계에 동기화되면 기존의 자아가 해체되면서 좀 더 복잡하고 정교한 자아로 재편성된다고 말이다.

자신과 다른 이질적인 새로운 대상을 만남으로써, 더 폭넓고 깊은 세계관을 가진 자아로 업데이트되는 경험은 즐거운 일이다. 그것은 책이 주는 적지 않은 즐거움들 중 하나이다.


물론 '책'뿐 아니라, 모든 새로운 대상에 적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대상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일단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호기심이 점점 흐릿해진다. '태양 아래 새로울 것이 없다'라고 심드렁하게 주변 대상물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대상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보아왔다. 이제는 무엇을 보아도 별로 새롭지가 않다. 늙는다는 것은 결국 호기심이 줄어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호기심의 총량이라는 게 있을 리 없다.

호기심은 옹달샘처럼 계속 솟아나는 성질이 있다. 퍼내어도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다. 그런 성질을 이해한다면 , 샘을 퍼내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경험이 적을 때는 호기심이 저절로 솟아났지만, 나이가 들었을 때는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노력할 때 호기심이 부활한다고 생각한다. 한번 부활한 호기심은 관성의 법칙으로 계속 작동할 것이다.


샘을 퍼내는 일이 무슨 특별한 큰일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작은 관심을 갖고 주변의 소소한 대상들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 대상들은 매일 만나는 것들, 예를 들면, 산책할 때 무심코 지나쳐 버린 풀꽃들, 벌레와 새들, 나무들, 혹은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겠다. 너무 당연해서 아예 의식조차 하지 않는 것들에게 관심을 의도적으로 가져보는 것이다.

흔히 시를 쓸 때 관찰 대상에 대해 '낯설게 보기'를 강조한다. 그것처럼 일상에서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일상의 삶이 한 편의 멋진 시를 쓰는 일이 되지 않을까.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서, 우치다 다쓰루가 말한 부분을 내 식대로 살짝 바꾸어 보면, 호기심은 새로운 세계에 접속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타자에 동기화하는 것, 그것을 통해 기존의 자아를 일단 해체하고 좀 더 복잡하고 정교한 자아로 재편성"하게 하는 것이다.

호기심은 삶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에너지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기만의 방/버지니아 울프/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