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작가는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정신분석을 받은 일, 그 후 혼자서 긴 여행을 떠났던 일을 꼽겠다고 했다. 그녀는 그 기간 동안 집약적인 내적 통찰과 폭발적인 감정 역동을 경험했고, 오랫동안 자기 분석과 훈습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 결과 이전보다 편안하고 고요하게 살게 되었다고 했다.
책날개에 쓰인 내용만으로 이 책은 충분히 유혹적이었다. 더구나 부제가 '심리 훈습 에세이'이다. '훈습'이라는 말은 그리 익숙하지 않다.
'훈습'은 정신분석 과정을 철저히 이행하는 작업'을 우리말로 번역한 용어이다. 훈습은 유식 불교에서 따온 용어로, '지각과 의식을 통한 경험이 가장 깊은 층에 있는 아뢰야식에 배어들어 저장되는 것'을 말한다.
prologue에 들어가기 전에 저자가 한 말이 곧 이 책의 목표인 듯했다.
마음이 산처럼 평온하고 바다처럼 관대하고 만나는 모든 사물이 이해되는 그런 상태가 될 때까지, 훈습은 계속될 것이다. 삶이 곧 훈습 과정이므로.
책은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장은 '하던 일 하지 않기'다. 훈습 첫 단계에서 행동 지침으로 삼은 큰 틀이다. 유아기에 만들어진 후 검증 없이 사용해온 오래된 성격과 생존법을 버리며, 불안을 인식하고 두려움을 수용하는 과정이다.
둘째 장은 '하지 않던 일 하기'다.
그동안 회피해 온 마음과 행동의 낯선 영역으로 새로운 지평을 탐색해 나가는 과정이다. 분화의 시간을 갖기 위해 '자발적 왕따', '무력한 채 머물기'를 시도하며 예전과는 다르게 관계 맺는 법을 모색하기다.
셋째 장은 '경험 나누기'다. 후배 여성들과 함께 한 독서 모임에 대한 기록이다. 전이, 역전이, 투사적 동일시나 자기실현 과정을 체험 속에서 인식하기다.
넷째 장은 '정신분석을 넘어서'이다. 정신분석적 심리 치료의 종결과 그 너머에 관한 이야기다. 영적 건강을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과정, 동서양 종교에 담긴 지혜의 도움을 받아 그것을 해결해 간 방법을 담고 있다.
작가는 자신과 독서모임을 함께한 후배 여성들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과 그녀 자신의 훈습 과정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었고, 그 점에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흥미로웠지만 무척 어려운 책이기도 했다. 한 인간의 내면을 알아간다는 것은 겹겹이 쌓여있던 어두컴컴한 무의식의 지층을 더듬는 일과 다를 바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난공불락의 요새를 두드리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작가는 다양한 정신분석 이론들과, 불교, 기독교, 유교, 도교 등의 다양한 경전을 꼼꼼하게 살펴가며 그 험난한 모험을 했고, 드디어 나름대로의 성취를 했다. 정말 대단했다.
책 속의 여러 경험들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책에서 언급된 다양한 경험들은 내게도 역시 유효한 것이었다.
마지막 장에서 그녀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 말은 비트겐슈타인이 한 말이긴 하지만, 작가는 그것이 '영적 각성되기'와 같은 범주의 것으로,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누군가의 경험이 뼈저리게 나의 것이 되지 못했고,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도 그리 소중한 것이 되지 못하는 일은, 흔히 겪는 일이 아니었던가.
결국 스스로 깨치는 수밖에 없지만, 좋은 책은 따듯하게 손 한 번 잡아주는 친구와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책과의 만남도 어떤 인연에서 비롯되었을까? 그렇게 믿고 싶다.
작가가 책에서 언급한 '충탐해판'에 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그 글을 옮기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짓겠다.
충고, 탐색, 해석, 판단의 앞 글자를 모은 그 단어는 한데 묶어 놓고 보면 방어의 언어라는 사실이 더 잘 이해되었다. 충고는 자기 생에서 실천해야 하는 덕목들을 남에게 투사하는 것이고, 탐색은 상대에게 존재할지도 모르는 위험 요소를 경계하는 일이었다. 해석은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타인에게 덧씌우는 일이고, 판단은 제멋대로 남들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행위였다. 우리는 누구도 그렇게 할 권리가 없지만, 일상적으로 늘 그렇게 생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모든 행위의 배경에는 그렇게 해야만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불안감이 존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