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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Aug 29. 2020

카센터 앞의 포도나무

-마음의 고샅길


 산책하고 돌아오다가, 동네 카센터 앞에 못 보던 나무가 한 그루가 서있는 것을 봤다. 궁금해서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포도나무였다. 늘 지나다니던 길목에 있는 카센터인데, 여름이 거의 다 지나갈 때까지 포도나무를 보지 못했다. 그동안 왜 보지 못했을까?

그런데 카센터 앞의 포도 나무라니!

순간적으로 허를 찔린 듯했다.

있어서는 안 될 곳에 포도나무가 있어서인가. 그건 아니지 않나?

포도나무가 있어서는 안 될 곳이 어디 있겠는가. 나무는 흙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있을 수 있다. 포도나무가 꼭 정원이나 과수원에만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묵은 고정관념일 뿐이다.


 이번 여름, 폭염 탓인지 포도송이는 총총하게 달리지 못하고 허술하게 달려있었다. 그렇지만 그 앞을 지나다니는 수많은 행인들과 가게에 온 손님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을 주었을 것 같다. 이른 아침 산책에서 돌아오다가 내가 놀랐던 것처럼.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은 가게 주인일 것이다. 나는 그가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엔진오일을 비롯해 갖가지 좋지 않은 냄새 풍기는 카센터 옆 좁은 공간에, 포도나무를 심을 생각을 했으므로.

카센터와 포도나무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아주 멋진 풍경을 연출했으므로.


 예술은 다른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거나 발견하지 못한 것을 창조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은 예술가이고, 카센터 앞의 포도나무는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잘 살펴보면 평범한 곳에서도 이런 멋진 예술작품을 발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앤디 워홀의 말이 생각난다.


모든 것이 아름다움을 갖고 있으나, 누구나 이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말을 살짝 바꾸고 싶다.

 모든 것이 아름다움을 갖고 있으나, '언제나'이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로.

 같은 대상을 보아도 때에 따라 그 대상이 전혀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그 이유는 보는 순간의 마음 상태, 즉 ‘마음이 열려 있을 때'와 '닫혀 있을 때’에 따라서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카센터 앞을 늘 지나다니면서도 포도나무를 못 본 것은, 마음을 열고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포도나무 한 그루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모처럼 상쾌한 아침이다.




 *2018년 8월에 써두었던 글을 우연히 발견하고 다시 옮겨보았습니다. 그 해 여름의 지긋지긋한 폭염이 생각이 나네요.^^                        


                                

                                                                                                             

올해 확인한 포도나무. 이 년 전보다 잎이 무성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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