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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Aug 16. 2020

오렌지 재스민 꽃

  -마음의 고샅길

 긴긴 장마가 마침내 끝난 듯했다.  

 뒷베란다에서 재활용품 정리를 좀 하다 보니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른다. 올해는 장마가 팔월 중순까지 계속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래서 이젠 여름은 한물갔구나, 생각했지만. 웬걸!

장마가 끝나자마자, 여름이 ‘나, 아직 안 죽었소.’하고 저돌적으로 고개를 쑥 들이민다.


 요즘 비가 너무 자주 와서 베란다 화단에 물을 거의 주지 않았다. 오랜만에 화단을 살피러 나가봤더니, 한쪽 구석에 놓여있던 화분에 작고 하얀 꽃들이 맺혀있었다. 오렌지 재스민!

 재작년에 딸애가 들여놨는데 그해만 꽃을 잠깐 보여주고, 작년엔 영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한참 동안 꽃 생각을 하지 않고 관엽 식물처럼 이파리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더위에 꽃을 피워 내다니. 꽃 피우느라 땀을 뻘뻘 흘리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었다.

 원산지를 찾아보니 중국 운남과 대만이라고 한다. 지금 이때가 그곳 날씨와 비슷한 모양이다. 여름을 가장 싫어하는 나와는 달리, 오렌지 재스민은 제철을 만난 것이다. 이처럼 모두에게는 각각의 제철이 있다. 그 생김새와 성격 또한 각각 다르듯이.

 꽃향기를 맡아보니 오렌지향처럼 달콤하고 상큼했다. 한여름의 끈적이는 불쾌한 기분을 일시에 날려주는 듯했다. 꽃은 자태도 아름답지만, 꽃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향기라고 생각한다.


 각각의 꽃들이 고유의 향기가 있듯이, 사람들도 그들만의 향기가 있다. 향기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바로 맡을 수 있는 강렬한 향기와, 가까이 가야만 맡을 수 있는 그윽한 향기가 있다. 어느 향기가 더 좋다고 할 수는 없는, 취향의 문제인 것 같다.

 문득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들은 어떤 향기를 가진 사람들일까, 내 멋대로 상상해보았다.

이 사람은 장미 향기, 저 사람은 매화 향기, 이 친구는 국화 향기, 저 친구는 백합 향기···. 이렇게 상상하다 보니 사람도 꽃처럼 아름다운 존재로 느껴졌다.


 바쁘게 살다 보면 그 향기의 아름다움을 망각하고 살게 된다. 그래도 가끔은 멈추어 서서 그들을 가슴속 꽃밭으로 불러들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그 향기는 혼자 쓸쓸히 헤매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 같다.

 내게 소중한 존재일수록 자주 들여다보고 쓰다듬어주어야 한다. 사실은, 자주 들여다보고 쓰다듬어주었기 때문에, 소중한 존재가 되었던 것인데, 그것을 자주 잊고 산다.

 우리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사람에 대해서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늘 가지지 못한 어떤 것/사람을 가지려고 애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왜 늘 더 가지려고 애쓸까.

 진정으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이 년 만에 환한 미소로 돌아온 오렌지 재스민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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