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여자의 공간/타니아 슐리/이봄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글 쓰는 여자의 공간은 어떤 곳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이 책은 프랑수아즈 사강, 거투르드 스타인, 한나 아렌트, 시몬느 보부아르, 애거사 크리스티에 이르는, 이미 작고했거나 활동 중인 여성작가 35인의 창작의 산실이었던 공간을 보여준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이 있었다. 그 독립의 공간에서 작가들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늘 글을 썼다. 글이 곧 그들의 삶이었으므로.


그들이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부러웠다. 나는 언제쯤 나 혼자만의 절대 공간을 가질 수 있을까?

자식들이 이제는 모두 직장 생활하는 성인이 되었지만, 독립을 하지 않아서 아직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여전히 방마다 자식들의 책이 쌓여있다.

십여 년 전에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서재를 내 공간이라고 잽싸게 찜해보았지만, 슬금슬금 기어드는 적들(?)의 침입을 막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공생의 길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혼자 글 쓸 수 있는 공간은 부재했고, 부재의 공간은 사고의 부재를 야기시켰다고 넋두리를 해본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핑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간절히 쓰고 싶은 뜨거운 열정과 무쇠 같은 노력이 있었더라면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끈기 없는 게으름의 필연적인 소산일 뿐이다.


그런데 글은 왜 쓰고 싶은 걸까? 세상에는 뛰어난 글쟁이들이 이미 차고 넘치고 있다. 굳이 나까지 보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늘 따라다닌다. 전문적인 글쟁이들은 글 쓰는 것이 직업이지만, 내가 굳이 글을 쓸 필요가 있는가.


글을 쓰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글을 쓰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생각 없이 막 살기보다는 조금은 자신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써둔 글은 자기 삶의 궤적을 기록한다. 제임스 셜터의 책 제목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처럼, 쓰지 않으면 내 삶의 풍경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작품성 있는 품위 있는 글일 필요는 없다.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그저 내 삶을 소박하게나마 기록해둔다는 의미로 글을 쓰는 것으로 족하다. 인정 욕구가 본능의 하나이긴 하지만, 너무 타인의 눈을 의식하면 삶의 주체가 되기 어렵다. 묵묵하게 내 삶을 살고, 그 삶의 순간순간을 기록해둔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것이 좋겠다.


글 쓰는 작가들의 공간을 구경하다가, 엉뚱하게 내 이야기로 흘러들어 갔다. 아무튼 글을 쓴다는 행위는 자기 삶을 성찰하려는 의지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책 속의 어떤 작가들은 불행했고, 어떤 작가들은 행복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모두 자기 삶을 활활 태우며 살고 있거나, 살다 갔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 멋진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이 앞 시대를 살다 간 작가들이었는데, 그들은 여자로서, 남자들보다 글쓰기에 더 많은 제한과 장애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기 삶을 펼쳐 나갔다. 그런 그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애정을 보내며, 책을 덮었다.


우리는 그들이 살다 간 세상보다 분명 더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이 시대의 여자들이 그들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에 대해 선뜻 대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진정한 자유는 외적 장벽에 구애받지 않고, 내적 자아가 쟁취하는 고귀한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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