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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Sep 04. 2020

금 간 항아리

 -마음의 고샅길



 인간관계는 행복이나 만족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인간관계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 한다면, 계속해서 환멸만을 느낄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관계가 행복이 아닌 깨달음을 위한 것임을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인간관계에서 구원을 얻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찾아올 더 높은 차원의 의식 수준에 도달하게 될 겁니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이 순간의 나』 중에서


 살아갈수록 삶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인간관계의 갈등을 꼽을 수 있겠다. 관계의 종류는 가족, 친구, 지인, 그리고 회사 동료들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다. 

 관계는 나와 나 이외의 누군가를 잇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에는 둘 사이를 잇는 거리가 존재한다. 그 거리는 감정이나 정서의 거리가 될 것이다. 그 거리를 적당히 조절을 잘하는 것이 관계 맺기에서 중요한 것 같다. 


 그런데 그 정서적 거리에서 문제가 발생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해서인 것 같다. 그동안 둘 사이의 공통점이 많았기 때문에 가까워졌고,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이 ‘같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느낀 순간, 상대방에게서 모종의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사실은 상대방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방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상대방과 나의 다름은 지극히 정상이다.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비정상이다. 그런데도 자꾸 서운해진다. 이 심리는 도대체 뭘까?


 가까운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문과 문틀 레일 사이에도 일정한 유격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빡빡해서 문을 열고 닫기가 힘들다. 정서적 거리도 너무 가까우면 서로 상처를 주고 입게 된다. 

  가까운 사이에는 격의가 없어서, 온갖 이야기를 다 나눈다. 내 마음이 상대방과 같을 것이라고 믿고서 나름대로 솔직하게 한 이야기가, 때로는 생각지도 않게 상대방에게 반발심을 일으키거나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가깝다는 이유로 자기 마음의 쓰레기를 상대방에게 생각 없이 마구 버리기도 한다. 버리는 사람은 쓰레기를 비우는 시원함이 있겠지만, 쓰레기를 받는 사람의 마음은 불편하다. 그렇지만 가까운 사이여서 차마 이야기하지 못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이런 유쾌하지 못한 감정이 계속 쌓이면, 둘 사이의 마음을 담은 항아리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그 균열은 처음에는 아주 미세해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균열이 시작된 항아리는 즉시 손질해두지 않으면 물을 담기 힘들어진다.


 열길 물속은 들여다볼 수 있어도, 한 길 사람의 마음은 볼 수 없다고 한다. 아무리 오랫동안 함께 지냈지만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만약에 서로가 이심전심의 경지에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그러나 현실은 불행히도 그렇지 못해서, 사랑이나 우정은 때때로 아주 사소한 일로도 깨진다. 


 살아오면서 주변의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헤어졌다. 어떤 때는 내가 떠나보냈고, 또 어떤 때는 그들이 스스로 떠나버리기도 했다. 그중에는 내가 정말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알 수 없는 어떤 균열이 우리를 영영 갈라놓았다. 한번 금이 간 항아리에는 물을 다시 담을 수 없었다. 


 격의 없는 사이일수록 서로 상처를 주기 쉬운 것이 현실의 아이러니다. 일반적으로,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않고 예의를 차린다. 예의를 차리면 아무래도 실수를 덜 하게 된다. 그러니 가까운 사이에도 예의를 차려야 한다. 아니, 가까울수록 더욱 필요한 것이 예의다. 


 에크하르트 톨레가 말한 것처럼, 인간관계에서 행복이나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최근에 새삼 깨달았다. 이런 깨달음은 내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태풍이 지나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다. 매미 소리는 여전히 시끄럽지만, 공기는 한결 서늘해졌다. 어느덧 뜨거웠던 계절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사람들과의 뜨거웠던 관계도 이제 좀 서늘해져야겠다. 아쉽지만 슬퍼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계절이 바뀌듯이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서늘한 가을을 기다리는 한 마리 새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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