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말고 다녀와/김현/알마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켄 로치에게


맨 앞 장 일러두기에

‘이 책은 존 힐이 쓰고 이후경이 옮긴 《켄 로치》(컬처 룩, 2014)를 참조했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들어서며’에서 김현은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켄 로치의 영화로부터 시작됐으나 그보다는 그의 말을 신뢰하는 글들로 채워졌다. 쓰기 전에는 복잡했으나 쓰면서는 단순하길 바랐다. 사람과 사람이 겪는 일이 중요했다. 왜 아니겠는가. 우리는, 적어도 나는 매일 놀고먹을 수는 없을까를 꿈꾸며 노동하는 사람이다.


나는 켄 로치를 잘 모른다. 그러나 작가가 인용한 글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상상할 수 있었다.


한 편의 영화로 우리가 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건 언제나 놀랍습니다.
영국 정부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희생시키며 힘 있고 부유한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지요.
우리는 많은 나라에서 같은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조금씩 다를지라도 근본적으로 같은 이야기들이지요.
당신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요?
우리의 영화를 봐주어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에게 희망과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 켄 로치, 폴 래버티, 레베카 오브라이언으로부터



이 산문집은 켄 로치 감독에 대한 오마주로 쓰인 듯했다.

그리고 젊은 작가의 글을 통해 요즘 세대들의 꿈과 고민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글은 짧았지만 생각은 짧지 않았고, 글의 톤은 밝았으나 글이 남긴 여운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그의 글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들을 몇 개만 옮겨본다.


언제나 독서하는 생활에 관해 쓰고 싶다.
시집 몇 권 읽는 일조차 쉽지 않은 때다. 그러나 여전히 쓰는 사람이 있고, 그러니 계속해서 읽는 사람이 필요하다. 읽는 사람만이 결국 문학의 증인이 될 수 있다. 모든 문학은 각자의 생활력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다. 남녀노소에게 읽히기를 바라면서. 생활의 신파 속에 함몰되어서는 안 될 인간의 성장에 관하여. 인간의 성장 속에 함구되어서는 안 될 생활의 퇴화에 관하여. 우리가 다시 발견해야 할 것과 우리가 새로이 발명해야 할 문학이란 무엇인가 질문하면서. 문학은 결국 읽은 사람에게만 물음을 남긴다. 문학은 생활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문학은 그 패배에서 승리를 맛본다. (48~49쪽)


‘ 벗’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자주 쓰는 말은 아니지만. ‘오랜’이라는 낱말 뒤에는 괜스레 벗이라는 낱말을 붙여주고 싶다. 오랜 뒤에 붙는 벗은 함께 지내며 세월을 보낸 사람이라는 의미를 한결 자연스레 전해준다. 어쩐지 더 고색창연한 느낌. 새삼 친구와 벗은 어떻게 다른가, 다를 수 있는가 궁금해진다.
친구를 오래 묵혀두면 벗이 되는가?
내게 두 낱말은 말맛도, 말의 풍경도 다른 말 같다. 그러므로 말의 의미도 달라지는 말. 친구는 막 깎은 무의 맛 같고, 벗은 오래 익은 무의 맛 같다. 친구는 화창한 바닷가의 말 같고, 벗은 한적한 숲길의 말 같다. 친구는 다수라는 뜻 같고, 벗은 한 사람이라는 뜻 같다. 친구가 벗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143쪽)



나는 구름 보기를 좋아한다. 그중 제일은 여름 구름이다. 고개를 들어 웅장하고 변화무쌍한 구름의 형상을 관찰하고, 중구난방인 듯 보이나 일정한 박자를 가진 구름의 흐름을 추적하는 일은 요즘 같아선 세상 쓸모없는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 무용한 행위에서 유용한 가치를 찾아낸 이들도 있었다. 일찍이 수많은 예술가와 철학자가 구름에서 ‘순간’을 발굴했다.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이며 순간의 산물로만 수렴되는 구름을 통해 그들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묻고자 하였다. 때때로 한 무리의 몽상가들은 구름이라는 이미지에 힘입어 자유와 평등과 사랑을 그리고 인생을 “음미하지 않은 인생은 살 가치가 없어. 하지만 음미해버린 인생은 딱히 매력이 없지”라고 논하기도 했다. 구름의 쓸모만큼이나 구름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드는 인간의 행위는 단순하고도 직선적인 실용의 움직임이다. (173쪽)


짧게 보자면 나는 낙관적이지 않다. 악순환이 계속되니까. 그러나 길게 보자면 사람들이 거기에 맞서 싸울 것이니 낙관적이다.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걸 표현하게 하고, 그 활력을 나누게 하는 거다. 그게 사람들을 웃게 만드니까. 그게 바로 아침에 일어나게 만드는 힘이니까.
켄 로치는 공공연하게 이야기한다. 자신의 영화가 부당한 현실을 바꾸는 데 “미약하게라고” 일조하기를 원한다고. 그는 아마도, 지혜롭게도 스스로를 현실에서 맞서 싸우는 자들에 연대하는 예술가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의 영화는 언제나 삶, 사람에 가까워지려 한다. 사람에 가까운 카메라. 사람에 가까운 영화.(176쪽)


예전에 이 책을 읽고 나서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2016년 칸영화제 황금 종료상을 받았다. 그는 노동계층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거나 국가 복지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평하는 사회성 짙은 영화를 주로 제작했다.

이 영화를 보고 놀란 것은 선진국 영국의 사회복지제도가 생각보다 너무 허점이 많다는 것이었다. 복지 사회의 모순을 논리로 따진 것보다는, 한 편의 영화가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생각하게 했다.


책에서 알게 된 정보로 영화를 보게 되었고, 영화는 책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책과 영화는 내가 간과하고 스쳐 지나갔던 많은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공통의 미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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