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영미 작가들이 펼치는 산문의 향연.
여러 작품들이 있었지만, ‘글쓰기’와 ‘독서’에 관한 내용이 특히 인상적이어서 그 내용들만 옮겨본다.
윌리엄 포크너의 <서문> 중에서
사람의 마음을 북돋는 것. 글 쓰는 사람 모두 마찬가지다. 예술가가 되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가벼운 오락거리를 쓰는 사람도, 충격을 주기 위해 쓰는 사람도, 자신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쓰는 사람도 모두 마찬가지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글을 쓰는 까닭임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알지만 부정하려는 사람도 있다. 감상적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스스로 감상적이라 자백하게 될까 봐, 비난받을까 봐 부정한다. 무슨 까닭인지 요즘 사람들은 감상적이라는 꼬리표를 부끄럽게 여긴다. 우리 글 쓰는 사람 중에는 마음이 어디 있는지에 대해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한 사람도 있다. 마음을 더 천한 샘과 기관, 활동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사람의 마음을 북돋우려는 목적을 위해 쓴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람을 변화시키거나 개선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그러기를 바라는- 심지어 의도하는- 작가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북돋우려는 희망과 욕망을 끝까지 분석해보면 전적으로 이기적이며, 완전히 개인적이다. 글 쓰는 사람은 바로 자신을 위해 사람의 마음을 북돋우려 한다. 그렇게 해야 죽음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가 북돋우려는 마음들로 죽음을 물리치고 있다. 또는 심지어 자신이 건드린 비천한 분비샘들로 죽음을 물리치고 있다. (...)
따라서 인간미 없는 차갑고 고립된 활자로 이런 흥분을 싹 틔울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싹 틔운 불멸을 함께 누린다. 언젠가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때가 되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차가운 활자로 고립되어 안전하게 남은 그것은 그가 숨 쉬고 고뇌하던 공기로부터 여러 세대 떨어진 사람들의 심장과 샘에 여전히 오랜 불멸의 흥분을 싹 틔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 번 가능했다면 자신이 죽어 희미해진 이름으로만 남은 지 오랜 뒤에도 여전히 가능하고 효력이 있으리라는 걸 그는 안다. (184~186쪽)
-창작 행위, 혹은 예술의 근원적인 목적은 ‘전적으로 이기적이며, 완전히 개인적’이라는 말에 완전히 동의한다. 그리고 불멸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예술가들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끄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브룩 잭슨의 <애서가는 어떻게 시간을 정복하는가>에서
책 읽기 좋을 때는 아무 때나다. 아무 도구도 필요 없고 시간과 장소를 지정할 필요도 없다. 책 읽기는 낮이든 밤이든 어느 시간에든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이다. 책 읽을 시간이 있고, 책을 읽고 싶을 때가 바로 책 읽기 좋은 시간이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건강하거나 아프거나 책은 읽을 수 있다. 이유 없이 또는 사소한 연상 작용으로 문득 책이 읽고 싶어 질 때가 있다.
하지만 기회를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다. 책 읽기 좋은 때는 나중이 아니라 지금이다.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분명 즐거움을 놓치고 말 것이다. 책을 읽는 근사한 상상에 빠져 수천 권의 책을, 그것도 훌륭한 판본으로 수집했는데 책장도 잘라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는, 해머튼의 친구처럼 말이다. 그러니 해머튼이 독서야말로 우리가 마음먹는 온갖 일 중에 가장 큰 환상이라고 말할 만하다. 무한한 미래에 방대한 문학을 읽겠다고 마음먹었다가 결국 시간에 패배하고 마는 것만큼 흔한 일이 있을까? 오늘 읽을 책을 결코 내일로 미루지 말자.(220~221쪽)
-오늘 읽을 책을 결코 내일로 미루지 말자!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간들의 미루는 습관에는 변함이 없나 보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보고 싶은 책이 있을 때 미루다 보면, 그 책을 영영 못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진리는 늘 평범하지만 실천은 그리 쉽지만은 않은 듯하다.
찰스 램은 여름에는 책을 많이 읽지 못한다고 했다. 시를 읽을 때는 쌀쌀한 날 촛불을 켜고 읽는 걸 좋아했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걸출한 자들과 시간을 보내니
겨울밤이 얼마나 즐거운가! (Mark Akenside)
요즘에도 이런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겨울이 일 년 중 책 읽기에 특히 좋은 시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겨울에 시와 수필을 읽으면 한층 더 기분이 좋다. 바깥은 온통 춥고 습한데도 우리는 푸른 잔디와 꽃이 만개한 나무, 봉오리 맺힌 꽃, 파란 하늘의 세상으로 순간 이동할 수 있으니 말이다. (220~227쪽)
-찰스 램은 여름에는 책을 많이 읽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오히려 여름이 어느 계절보다 책 읽기에 좋은 것 같다. 왜냐하면 봄이나 가을에는 바깥 날씨가 아주 좋아서 실내에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에 냉방이 잘 된 쾌적한 실내에서 책을 읽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찰스 램이 살던 시대보다 우리는 훨씬 독서하기 좋은 환경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 시대 사람들보다 현대인이 독서를 더 많이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오스카 와일드의 <읽을 것이냐, 읽지 않을 것이냐>에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읽으라고 말하는 것은 대체로 쓸모없거나 해롭다. 문학을 감상하는 일은 기질의 문제이지 가르침의 문제가 아니다. 파르나소스에 이르는 길에는 독본이 없으며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배울 가치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무엇을 읽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다른 문제이다. 대학은 무엇을 읽지 말아야 할지 알려주는 일을 대중교육의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고 나는 조심스럽게 추천하고 싶다.
사실, 무엇을 읽지 말아야 할지 알려주는 일은 우리 시대에 대단히 필요하다. 우리는 너무 많이 읽다 보니 감탄할 시간이 없고 너무 많이 쓰다 보니 생각할 시간이 없다. 누구든 현대 도서목록의 혼돈 속에서 ‘최악의 책 백 권’을 선정해서 발표한다면 젊은 세대에게 실질적이며 지속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232쪽)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듯이, 요즘에도 ‘최악의 책 백 권’을 선정해서 발표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매일매일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책들 중에서 좋은 책과 그렇지 못한 책을 미리 선정해주는 매체가 있다면, 독자들이 쓸데없이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와 글쓰기는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행위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것들만큼 만족을 많이 주는 것도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특히 글쓰기는 스스로에게 유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으니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품격 있게 잘 쓴 글에 한한 이야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