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배처럼 텅 비어/최승자/문학과지성사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신탄진에서 기차를 타면서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시집의 제목이 마치 시인의 생애를 은유하는 듯해서 잠시 눈이 시렸다.

생의 바다를 건너갈 배, 즉 자신, 가 텅 비어 있다는 것이다. 이 비어 있음의 상태는 역설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야기 속으로 혼자 들어가 보기로 한다.


예전의 독기가 많이 빠져 있긴 했지만 영영 죽지는 않은, 최승자의 목소리가 슬프면서도 반가웠다.

차창을 통해 들어온 환한 햇살 속에서 어두운 실존의 시를 읽는 기분은 좀 묘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시는 <나의 생존 증명서는>이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의 생존 증명서는 시였고

시 이전에 절대 고독이었다

고독이 없었더라면 나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 시집에서 이 시 한 편을 만난 것만으로 만족한다.

시인의 정신을 엿볼 수 있어서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신분열증으로 병원에서 한 세월을 보내버린 시인의 삶이 몹시 안타까웠다. 유폐 아닌 유폐 생활을 한 시인의 정서를 엿볼 수 있는 구절도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세상과 떨어져 살아왔나

"보고 싶다"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깨달았다


'보고 싶다'라는 말이 있다는 것- 그 말을 처음으로 깨닫다니!

이런 단순한 표현으로 사람의 마음을 에이도록 아프게 하다니...

최승자 시인만의 독특한 화법이 갖는 매력인 듯하다.


시집을 다 읽고 나니 어느새 기차는 서울역에 도착했다.

한 생을 살아낸 듯한 긴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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