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성유미/인플루엔셜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친구’라는 존재는 살아오는 동안 내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존재에 대한 회의가 점점 깊어만 간다. 아니, 인간 자체에 대해서 전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나이가 되도록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 어떻게 타인을 알 수 있겠는가.


우정은 하나의 생명체와 같아서 잘 돌보고 가꾸어야 제대로 성장한다. 그냥 야생화처럼 내버려 두면 절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화분에 심은 한 그루의 꽃나무와 같아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늘 상태를 잘 관찰해야 한다. 적당히 물과 영양도 주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하게 자라고 예쁜 꽃도 필 수 있다. ‘세상에 공짜 없다’는 말은 우정에도 역시 적용이 된다.


가령, 오랫동안 내가 어떤 한 사람을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내가 그를 생각하는 만큼 나를 생각하지 않을 때, 서운함을 느끼게 된다. 서로의 감정 온도가 달라서 생기는 일인데, 오래 사귀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 마음을 상대방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친구 사이에 이심전심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친구가 배신을 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못 읽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것이다.



저자는 모든 인간관계는 ‘나와 너의 관계’ 혹은 ‘나와 그것의 관계’라고 했다. 나와 너의 관계는 순수한 목적 그 자체로서 인격 대 인격의 관계이며, 진정한 친구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와 그것의 관계는 상대방을 수단인 ‘그것’으로 생각하는 관계이다. 일종의 사회적 관계로 볼 수 있다. 이 관계 역시 나쁘게만 볼 수 없다고 한다.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관계도 어느 정도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진정한 친구 관계는 ‘나와 너의 관계’ 이어야지, ‘나와 그것의 관계’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와 그것의 관계’는 상대방을 자기의 필요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이용하는 행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의 하나로서는 어느 정도 용인이 될 수 있지만, 참다운 친구 관계라고는 할 수 없다.


참다운 친구 관계는 서로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관계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고통은 넘기면서도, 상대방의 고통은 듣기 싫어하며 외면하려고 한다. 또는 자기 문제에만 골몰하면서, 상대방의 문제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필요할 때만 찾는 이런 관계에서 진정한 우정이 생겨나기는 힘들 것이다. 이 경우에 누군가 한 사람은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


저자가 말했듯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나누어야 할 것이 있고, 나누어서는 안 될 것이 분명히 있다. 자신에게 불편한 것을 상대방과 굳이 나눌 필요가 없다. 이것은 배려에 속하는 문제이다.

고통을 함께 하는 일과 불편한 일을 함께 한다는 것은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가려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비롯될 수 있는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잘 지켜내기 위해서, 저자가 한 말은 되새길만했다.


관계에 있어 마지막 감정은 전부이자 모든 것이다. 마지막 감정을 어떻게 새기고 정리하느냐는 이미 정리된 관계는 물론, 새롭게 다가올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관계 설정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안 좋은 생각만 곱씹고 원망만 하고 앉아 있으면 좋은 인연이 와도 몸을 사린다. 반대로 ‘그래도 좋은 시간이었어. 이걸로 됐어.’라고 의연하게 정리하면 좋은 벗이 찾아왔을 때 기꺼이 손을 잡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떠난 사람에 대한 마지막 감정은 다음 관계의 시작인 셈이다.
그러니 해피엔딩까지는 아니어도 최악의 비극으로는 정리하지 말자. 좋은 기억은 그대로 두는 것, 미움으로 추억을 덮지 않는 것. 그리하여 과거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시간을 존중하게 될 때 내 마음과 시간 역시 허무하지 않게 된다.(107~108쪽)



그리고 저자가 언급한,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한 몇 가지 기준이 되새길만해서 옮겨본다.


<나쁜 사람은 보내고 좋은 사람은 남기는 몇 가지 기준>



1. 진짜 관계는 유익을 논하지 않는다. 요구하지 않는다. ‘함께 존재하는 강한 유대 감정’을 바탕으로 감정과 생각을 나누고 소통한다. 진짜 감정들이 중요하다. 관계 유지에는 에너지가 든다. 그렇지만 힘들고 괴로운 것이 아니라 ‘재미’와 ‘즐거움’이 있다. 상대방에게 어렵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이 나를 무겁게 하거나 괴롭힐 수 없다. 함께 염려하고 걱정하며 나눌 뿐이다. 그리고 가능한 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기꺼이 협력한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짐스럽고 골치가 지근지근 아프다면 가족이라 하더라도 진짜 관계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관계 맺고 있는 사람에게 힘든 일, 어려운 일, 문제가 생겼을 때 관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이 떠오르는지를 보면 관계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


2. 배려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타이밍을 고려하지 않는 배려는 가짜다. 상대가 원하는가의 여부를 묻지 않는 배려는 가짜다(...)

시의적절함이 바탕이 된 배려, 나의 필요를 물어봐 주는 배려가 진정한 배려다. 배려는 무언가를 많이 해주는 것, 뭘 많이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형편을 혹은 필요를 물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많다.


3. 진짜 관계는 완벽함에 있지 않다. ‘좋고 싫음’, ‘서로 다른 의견들’이 공존하고 충돌이 허용되는 것이 진짜 관계다. 논쟁도 없고, 싸움도 없고, 조용한 관계는 수상하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 싫은 것을 싫다고 할 수 있는 관계, 부당한 느낌을 나눌 수 있는 관계, 그런 소통들이 관계 자체를 흔들지 않는 관계가 진정한 관계이자 동등함과 공정성이 살아 있는 관계 맺음이다.


4. 진정한 관계에서 무엇을 얼마만큼 공유해야 한다는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나누고픈,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뿐이다. 내 감정, 내 느낌, 내가 경험한 좋은 것을 놔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그것을 공유하면 된다. 불편한 것은 굳이 나눌 필요가 없거나 심지어 나누어서는 안 될 것들일 가능성이 높다.(151~·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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