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한 가장 지적인 여행'이라는 부제가 책 표지 한가운데에 있어서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2009년 저자는 갑자기 일자리를 잃었고 오랜 연인과도 결별했다. 상처 받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그녀는 우즈 강으로 갔다.
우즈 강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죽음이 담긴 곳이었다. 저자는 우즈 강을 따라 일주일간 도보여행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보고 느낀 인간과 자연, 문학, 역사, 신화 등에 대해 깊이 사유했던 것을 에세이로 썼다.
처음에는 책에 나오는 다양한 새와 야생화에 대한 박식한 지식에 깜짝 놀랐다. 그녀는 저널리스트로 전향하기 전에 약초 치료사로 활동했다고 한다. 자연과 풍광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무척 전문적이어서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자연과학도가 쓴 탐사기 같다고 느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에세이집이어서 문학적인 깊이와 철학적인 사유를 은근히 기대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꽤 차이가 있었다. 강을 따라 걸으며 발견한 풍경에 대한 묘사는 에세이라기보다는 거대한 박물학 지 같아서,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책 표지에 쓰인 표현 그대로 '지적인 여행'인 것은 맞다. 그런데 그 '지적'의 의미가 내가 상상한 것과는 달랐다. 나는 인문학적 상상의 범위에서의 '지적 '인 내용을 기대했다. 그렇지만 책 속 내용은 말 그대로 지식적인 면에서의 '지적'이었다. 에세이 형식도 우리나라 에세이와는 결이 좀 달라서 이질감을 느꼈다.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언제나 물에 사로잡힌다.‘
이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잘못 읽어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강으로 갔다. 그리고 그 강은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죽음이 담긴 곳이었다. 길을 걸으며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소환하며 그녀의 세세한 삶을 중간중간에 쉼표처럼 삽입했다. 그녀의 여행기에 좀 더 강렬한 색채를 더하기 위해서 버지니아 울프를 잠시 불러낸 듯했다.
강 자체의 근원적인 의미에 집중해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듯했다.
강은 물이고, 물은 만물의 근원이다. 모든 생명은 물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머물다가 세상으로 나왔다. 어머니의 자궁은 따듯한 양수로 차있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 받을 때 우리를 보호해주던 근원적인 그곳, 즉 물로 회귀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어쩌면 올리비아 랭도 무의식적 회귀본능에 따라 우즈 강으로 향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혼자 걷는다는 것. 그것은 명상의 다른 형태이다. 올리비아는 강을 따라 혼자 걸으며 스스로를 치유했다. 걷기와 물이 그녀의 지친 영혼을 말끔히 치유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책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물속에 들어가면 가끔은 모든 생각과 욕망이 씻기는 것 같다. 마음이 느긋해져서 나의 맥박을 마음껏 즐긴다. 물을 뚫고 내 눈까지 다다르는 너울거리는 빛을 감지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진다. 나는 마치 태어나지도 않은 것만 같다.
올리비아 랭이 들어간 곳은 강이면서,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자궁 속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걷기에 대한 그녀의 마음 상태가 드러나는 부분을 보면,
오래 걷다 보면 어느새 빠지게 되는 비몽사몽 한 상태에 접어들었다. 다리와 머리가 따로 놀아 서로 보조를 맞추려 애쓰고 있었다.
심리적으로 혼란 상태에 빠진 올리비아 랭이 제자리를 찾아가려는 과정처럼 보이지 않는가.
책 뒷부분을 보면 참고문헌이 무려 6장이나 차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방대한 지식이 참고 문헌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에세이에 이 만큼의 문헌을 참고로 했으니, 에세이가 아니라 과학 저널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던 것이다.
책 속의 강으로 풍덩 빠져들기 위해 기대를 하고 입수했지만, 나는 강에 푹 잠기지는 못했고 즐기지도 못했다. 물론 이건 온전히 내 능력 부족 탓이다.
그리고 언론에 노출된 이 책의 평가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 같다. 늘 그렇듯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수밖에 없다.
다만, 책 한 권을 내기 위해서 저자가 기울인 엄청난 노력은 경탄할 만했다. 그리고 가끔 언급한 버지니아 울프 부부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생활 이야기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우즈 강의 여정에 반짝이는 빛을 더해주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