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이 책은 필립 로스의 자전적 에세이이자 유일한 자서전인 만큼, 그의 모든 소설의 원형이 된 사실들, 혹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필립 로스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소설로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자서전이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인 만큼, 솔직함이 매력이자 미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립 로스는 퓰리처 상을 수상했고 미국 예술문학 아카데미 최고 권위의 상인 골드 메달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의 생존 작가 중 최초로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Library of America, 미국 문학의 고전을 펴내는 비영리 출판사)에서 완전 결정판(총 9권)을 출간한 작가이다. 한 마디로 대단한 작가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의 작품을 읽어 보지 못한 채 그의 자서전부터 읽게 되었다. 그러니 그가 자서전에서 언급한 그의 작품들에 대한 흥미로운 힌트가 내게는 아쉽게도 무용한 것이었다.
읽는 책의 순서가 바뀌었더라면 그의 작품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 미리 그의 작품에 대해 힌트를 얻었으니 나중에라도 그의 작품을 만난다면 친숙하게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장은 '주커먼에게'이다. 주커먼은 필립 로스의 작가적 분신으로 1974년 작 <남자로서의 나의 삶>부터 2007년 작 <유령 퇴장>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주커먼 시리즈'로 불리는 아홉 편의 작품들에서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필립 로스는 주커먼에게 '이 책이 쓸모가 있긴 한 걸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서 자신의 자서전에 대한 필립 로스의 긴장된 심리 상태가 드러나는 듯했다.
그리고 중간 부분은 대체로 그의 삶과 작품의 상관관계를 다룬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어서,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은 나로서는 정확하게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마지막 장은 '로스에게'이다. 주커먼이 필립 로스에게 보내는 답장인 셈이다.
그는 원고를 두 번 읽었다며 필립 로스가 요청한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출간하지 말게'로.
이유는 '자네 자신의 삶을 "정확하게" 보고하는 것보다는 나에 대해 쓴 글이 훨씬 나으니까.'라고 말이다.
주커먼은 소설 속의 분신이지만 필립 로스에게 출간을 말린다. 작가로서 자서전 쓰기에 대한 강한 저항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듯해서 흥미로웠다.
작가는 자신이 경험했거나 상상한 것을 소설이라는 예술품으로 만들었다. 예술품은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환상을 품게 하는 반면에, 자서전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에 감상자의 신비로운 환상을 산산이 깨뜨려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상상과 사실을 잇는 매개물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솔직히 창작자로서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필립 로스는 갈등을 느끼면서도 자기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을 위해 사후 서비스를 하기로 결정한 듯했다. 그의 결정은 작가로서라기보다 인간적인 결정이었던 것 같다. 그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이제 그의 진짜(?) 작품을 읽을 일만 남았다. 살다 보면 모든 일이 질서 정연하게 순차적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서로 순서가 바뀌거나 뒤죽박죽이 되기도 한다. 사실상 그것이 ‘진짜 사실들(The Facts)’이기도 하다. 이런 결론이 필립 로스의 자서전 제목 『사실들 The Facts』과 일치하는 듯해서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