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이 책을 알게 되었다. 한겨레신문에서 '어떤 메모'로 연재되었던 서평들을 묶어서 낸 책.
저자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독서와 독후감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다. 그 말들이 아주 강렬하게 인상적이었다.
프롤로그에서는 저자가 습득한 책 읽기 습관을 요약한 내용이 나온다.
1. 눈을 감아야 보인다(in/sight).
2.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기존의 인식을 잠시 유보한다.
3. 한계와 관점은 언어와 사유의 본질적인 속성이지, 결함이 아니다
4. 인식이란 결국 자기 눈을 통해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나의 시각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5. 본질적인 나는 없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나다.
6. 선택 밖에서 선택하라.
7. 궤도 밖에서 사유해야 궤도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8. 대중적인 책은 나를 소외시킨다.
9. 독서는 읽기라기보다 생각하는 노동이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는 독후감에 대해서 말한다.
다르게 읽는다고 절로 좋은 독후감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역은 필수다. 좋은 독후감의 전제는 일단 '다르게 읽기'다. 단언컨대 모든 사람이 알 만한 진부한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놓은 글이 나올 수 없다. 나는 좋은 책이 반드시 좋은 독후감을 낳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독후감은 에 관한 것이 아니라 책과 읽기의 상호 작용이기 때문에, 책의 수준과 무관하다...
사실 세상 모든 글은 독후감이다... 독후감은 글쓰기의 기본이자 첫걸음이다. 책이든 경험이든 사람이든, 대상과 접촉한 후 그 이후를 적는다는 점에서 독후감에 해당하지 않은 글은 없다. 모든 글은 경험기, 여행기, 훈습(working through)의 기록이다.
전반적으로 가슴에 와 닿는 글들이 많았다. 그 글들을 옮겨 적느라 팔이 좀 아팠다. 그렇지만 그 고통은 즐거운 고통이었다.
저자가 혼자 제주에 갔을 때, 아침밥이 제공되는 민박집에 묵었다고 한다. 그녀는 잠에서 깨어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밥이 있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 그녀는 전날 밤 감탄했던 제주도 구좌읍 하도리의 별들이 밥상으로 떨어지는 듯한 충격과 깨달음이 왔다고 했다.
왜 거의 모든 주부인 여성들은 평생 한 끼 반찬거리의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할까에 대한 저자의 성찰은, 내 생각과 너무나 똑같아서 반갑고 즐거웠다. 그나마 나는 전업주부이지만, 직장 여성들은 직장과 가정 두 군데에서 일하는 슈퍼, 아니 울트라 우먼의 삶을 살고 있다. 여성들의 삶이 점점 평등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사와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의 말처럼 '왜 세상은 가사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걸까? 세상의 판도가 이런 식이니 전업주부들도 가사에만 전업하지 못하고 부업이나 재테크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나 익숙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을, 콕 찍어 통쾌하게 고발한다.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 그녀의 글을 읽을 때 삶을 신선하게 전복시키는 시선을 느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환호가 저절로 나왔다.
글쓰기는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임을 새삼 깨닫게 된 책이었다.
좋은 작가와의 조우, 이런 일들이 나를 가끔 어린아이처럼 들뜨게 한다. 아직 읽지 않은 좋은 책들은 미래에 펼쳐 있는 즐거움들이다.
이렇게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주는 책들이 있어서, 아직은 절망보다는, 희망에 중심추를 걸고 살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