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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Dec 17. 2020

오래 준비해온 대답/김영하/복복서가

  -외로울 땐 독서


-김영하의 시칠리아


 이 책은 2009년 출간된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새로운 장정과 편집으로 펴내게 되어서 기쁘다고,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2007년 EBS 여행 프로그램 [세계 테마 기행] 론칭을 준비하던 제작진이 작가를 찾아와 어떤 곳을 여행하고 싶은지 물었고, 작가는 마치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시칠리아라고 답했다.

 작가는 시칠리아를 다녀온 후, 한국예술 종합대학 교수직을 사직하고 다섯 달 만에 아내와 함께 다시 시칠리아로 향했다. 이후 그는 밴쿠버와 뉴욕으로 이어지는 장장 2년 반의 방랑을 했다.


 삶은 어떤 예기치 않은 일로 커다란 변화의 물결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하는 것 같다. 작가의 시칠리아 여행기를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오래 머물던 곳을 불현듯 떠나서 어떤 새로운 곳으로 안착하게 될 때,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에도 변화가 생기고 새로워지는 모양이다.

 신체의 물리적인 이동이, 생각과 의식의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놀라운 일. 그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인 듯하다. 



 이 책의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작가의 고백 같은 글 몇 줄을 만났다. 괜히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느새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안의 어린 예술가는 어디로 갔는가?


    ······아직 무사한 걸까?



 첫 줄에서 그가 말한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아니 어쩌면 자기가 가장 혐오하기까지 했던 ‘그런 사람’의 모습과 가까운 것은 아니었을까. 

 살다 보면 젊은 시절에 추구했던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낯선 자신의 모습에서, 우리는 때때로 당황하기도 하고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거의 모든 것을 가졌던 것처럼 보였던 베스트셀러 작가도 이런 자괴감을 느꼈던 것일까? 그가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것은, 현실의 삶이 행복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작가는 시칠리아를 다녀온 후,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에서의 생활을 몇 년간 하게 됐다. 그런 생활은 방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탐구의 여정 같았다. 그런 자아 탐구의 여정에 오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용기와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힘든 결단을 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내게는 그런 의미로 다가왔다.

 책 속에 나오는 시칠리아 이야기, 시칠리아의 경관, 오래된 역사, 그곳 풍물들은 내게는 별로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즉 ‘외부세계’ 이야기는 별로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사람들마다 책에 대한 정서와 느낌은 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이 책이  시칠리아의 역사책 같은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작가의 작품에서 자주 느껴지던 어떤 신선한 느낌을, 이 책에서는 찾기 힘들었다. 


 처음에 나왔던 책이 절판되었으므로 그 책의 내용은 알 수 없다. 그래서 재출판으로 개정판이 얼마나 더 내용이 풍부해졌는지는 모르겠다. 작가는 시칠리아에서 해 먹었던 현지 음식 요리법을 추가했다고 했다. 그것으로 개정판이 얼마나 더 맛있는 책이 되었는지는 초판과 비교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 비교하면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러나 시칠리아 여행이 작가의 인생에 큰 획을 그었고,  또 그 여행기를 다룬 책이었다는 점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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