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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Jan 05. 2021

공터에서/김훈 장편소설/해냄

  -외로울 땐 독서

 격동적인 20세기 한국 현대사의 삶을 살아낸 마 씨 가족 연대기라고나 할까.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한국전쟁, 4.19, 5.16, 월남 파병, 5.18 항쟁 등 수많은 격랑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신산하고 쓸쓸한 것인지...


 김훈의 문체는 말할 수 없는 그 어떠한 것조차도 말하는 데에 그 특유의 매력이 있다.


 작품 속에서 몇 가지 그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그중에서 마차세의 딸 '누니'가 타는 조랑말에 대한 묘사가 무척 인상 깊었다. 


 


 비쩍 마른 말이었다. 뼈와 피부 사이에 전신의 핏줄이 드러나서 말은 혈관의 표본처럼 보였다... 말은 재채기를 했다. 말은 가끔씩 입을 벌려서 하품을 했다. 누런 이빨이 드러났고, 어금니 사이에 철제 재갈이 물려 있었다. 말은 평생을 물고 산 재갈이 아직도 힘든지 혓바닥을 길게 빼서 재갈을 뱉어내는 시늉을 했다. 재갈은 벗겨지지 않았다. 말은 늙어 보였는데, 태어날 때부터 늙은 말인 듯싶었다. 


 


 이런 말의 섬세한 묘사에서 마 씨 가족, 특히 마동수와 그의 아들들인 마장세, 마차세에 이르기까지의 마 씨 가의 삶이 잘 드러나 있는 듯했다. 삶의 재갈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운명적인 몫인지 모르겠다.

 오장춘의 자살은 너무 느닷없었다. 삶에 대한 그의 집착이 몹시 그악스러웠기에 더욱 그랬다. 삶의 한 편은 어쩌면 그렇게 허망하게 순간에 스러지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마차세의 아내인 박성희의 그림 <당신의 손>에서의 묘사 또한 의미 있게 와 닿았다. 


 

 손금들은 손바닥에 가득 깔려서 큰 흐름에 합쳐져서 저편으로 건너가거나 공간에서 길이 끊겨 살 속으로 스미듯 실종되었다... 바람이 부는지 손가락 마디 위의 잔털이 흔들려 보였는데, 손톱 아래쪽에서 먼동이 트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복잡하게 얽힌 삶이지만, 그 속에서 희미하지만 어떤 희망의 기운이 어른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한 삶을 살아낸 인간들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나 자신이 마치 그 삶을 함께 한 것처럼 몹시 피곤해졌다.

 오늘은 소한. 지금 창밖은 희미한 햇살이 비치지만, 곧 다가올 최강의 추위를 감추고 있다. 겨울 속으로 점점 달려간다는 것은 곧이어 다가올 봄도 거기 있다는 뜻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극한의 절망은 극한의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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