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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May 04. 2020

전업주부와 작가 지망생

 - 마음의 고샅길


 얼마 전에 생각지도 않게 브런치 작가에 선정이 되었다. 선정이 아니라 당첨된 것 같았다. 브런치에는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선정이 되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 선정 통보 이메일도 일주일 만에 열어보았다.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브런치에 들어와서 확인을 하고 나서야 겨우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기쁨은 잠시였다. 내가 과연 브런치에 계속 글을 올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그제야 슬그머니 들었다. 브런치에는 좋은 글을 쓰는 작가들이 굉장히 많았다. 괜히 일을 벌인 것은 아닐까 하는 후회마저 들었다. 

 그러나 삶은 어차피 선택과 도전이다. 도전 없이는 어떤 새로운 것을 만날 수 없다. 아예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는 것보다는 도전해서 실패라도 해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브런치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작가 프로필 란을 채워야 했다. 작가 프로필 란에 글 쓰는 사람의 직업 선택항이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전업주부’는 없었다. 전업주부는 집에서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프리랜서와 약간 비슷한 면이 있기 하다. 그렇지만, 월급을 받지 않으니 직업이라고 할 수 없다. 내 기준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지만, 직업은 어떤 경제적 보상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직업 유형 선택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을 해보아도, 내게 잘 맞는 항이 없었다. 그래서 직업란을 꼼꼼하게 다시 살펴보았더니, ‘작가 지망생’이라는 직업(?) 아닌 직업이 있었다. 그나마 나한테 가장 근접한 것은 작가 지망생이었다. 이 일로 인해, 오랜만에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브런치에 응모한 사람은 글 쓰는 작가가 되기를 원하니 작가 지망생이 맞기는 하지', 라며 애써 나를 설득하며,  프로필에 작가 지망생이라고 썼다. 그렇게 쓰고 나니, 내가 이전의 내가 아닌 것처럼 좀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마치 내가 앞으로 작가가 될 사람인 것처럼. 문득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수십 년 동안 내 정체성을 전업주부라는 프레임 속에 가두어 놓고 있었다. 그런 무의식적인 인식은 스스로를 작은 우물 속의 개구리로 머물게 했던 것 같다. 


 ‘지망생 (志望生)’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어떤 일에 뜻을 두고 그 일을 하려고 하거나 배우려고 하는 사람’으로 풀이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흔하게 들어본 말이지만, 그 뜻을 다시 새겨보니 새삼스럽게 좋았다. 그리고 한자어 ‘生’에서는 배우는 학생의 느낌이 스미어 있다. 학생의 이미지는 푸릇푸릇하고 생기와 활기로 가득 차있는 듯하다.


 삶에서 배우는 일은 살아있는 동안 계속되어야 한다. 배움은 삶을 더 지혜롭게 나아가게 한다. 브런치 작가에 선정된 것을 계기로 새로운 빛깔의 삶을 일구어보고 싶다. 그 빛깔이 내가 원하는 대로 칠해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단 뜻을 두었으니 그저 부지런히 정진하면 될 일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에 삶의 진득한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글을 잘 쓰면 더 좋겠지만, 글 쓰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다. 내 나름대로 글쓰기의 장점을 짚어보면, 글쓰기를 하면 주변의 대상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관심이 더 깊어지면 사랑으로 발전했다. 사랑은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삶을, 촉촉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또 글을 쓰다 보면,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에는 몰입했고, 그 순간은 무척 행복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행위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 아닐까. 나도 행복하기 위해 글을 쓴다. 


 최근에 읽은 책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의 저자인 제임스 설터는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결국 글쓰기란 감옥, 절대 석방되지 않을 것이지만 어찌 보면 낙원인 섬과 같다. 고독, 사색, 이 순간 이해한 것과 온 마음으로 믿고 싶은 것의 정수를 담는 놀라운 기쁨이 있는 섬.

 

 그의 말에서, 글쓰기의 궁극적인 목적이 결국 기쁨과 행복에 있음을, 새삼 확인했다.

 지금 내 글은 형편없을지라도,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점점 더 괜찮은 인간이 될 것이라고, 그리고 매일의 노력 과정이 결국 내 삶을 풋풋하게 해주는 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고 싶다. 

 브런치는 내가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었다. 그 멍석은 앞으로 내게 즐거움과 부담감을 동시에 줄 것 같다. 모든 삶에는 양면성이 있다. 그 양면을 다 수용할 때, 삶은 좀 더 확장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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