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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Mar 20. 2021

작가의 창/마테오 페리콜리/마음산책

-외로울 땐 독서


이 책을 기획하고 만든 건축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마테오 페리콜리는 ‘작가의 말’에서 이런 고백을 했다.



2004년의 어느 날, 나는 마침내 창밖 풍경에 주의를 기울였다. 사진 찍기를 시도해보았으나 곧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진은 그저 창밖의 풍경만 담을 뿐, 나의 풍경을 담지 못했다. 그래서 창틀도, 그 나머지도 갈색 소포 포장지에 연필과 오일 파스텔로 그리면서, 나는 그토록 오랫동안 와 있는 줄도 몰랐던 많은 것을 처음으로 알아차렸다. 내 머릿속 어디에 그것들이 숨어 있었을까?



『작가의 창』은 2010년에서 2014년까지 《파리 리뷰》에 실렸던 연재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작가의 창』에는 전 세계의 작가 50명이 글을 쓰는 공간의 창밖 풍경을 그린 그림과 글들이 실려 있다. 그들 중 내가 아는 작가로는 겨우 오르한 파무크, 무라카미 류 밖에 없었다. 그만큼 생소한 작가들이 많았다. 그들이 사는 곳은 터키 이스탄불, 이집트 카이로, 나이지리아 라고스, 독일 베를린,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 파리 등 매우 다양했다. 그 다양함만큼 창밖 풍경도 다양했고 작가들의 개성도 그러했다. 여러 작가들의 글 중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글을 몇 개만 옮겨본다.




알라 알아스와니 Alaa Al Aswany(이집트 카이로)


이 풍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2층 빨랫줄에 걸린 실내복이다. 천은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주인은 개의치 않는 듯하다. 드레서 상체 부분과 소매에 간단한 디자인을 보탰으니······ 더 아름다워 보인다. 그렇게 가난에 맞서는 자세를 나는 존경한다. 가난은 비참하지만 그에 맞서다 보면 고귀함이 나온다. 그러므로 가난을 격렬하게 동정하지 않으려면 창을 열어 이웃을 보기만 하면 된다(... ) 모든 창은 풍경에 상관없이 삶, 그 자체를 담고 있다.(28~30쪽)






리디야 딤코브스카(마케도니아 스코페)


창 너머로 보이는 건물의 지붕을 언제나 좋아했다. 아침에는 굴뚝에 황새가 한 마리 찾아와서는 내 방을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쳤고 또 이해했다. 그는 내 하늘이고, 나는 그의 땅 친구였다. 그에 대해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48쪽)






레일라 아부렐라(스코틀랜드 애버딘)


글을 쓰다가 집 꼭대기에 가려지지 않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건 좋다. 글이 잘 풀릴 때는 말이 되려고 기어오르는 의미의 압력이, 다스리거나 적어도 다뤄야 하는 솟구침이 찾아온다. 이러한 요동으로부터 언제나 깨끗하고 친숙한 하늘은 피난처가 된다.
이 창 너머로 나뭇잎이 11월 바람에 의해 낙엽으로 변해 떨어지는 걸 보았다. 이제 3월이니 새 잎이 언제 돋아날지 궁금하다. 나는 갱생의 목격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렇게 품는 기대는 믿음의 연습이다. 나는 매일 나무가 잎을 풍요롭게 틔울 것이라고 믿도록 스스로를 훈련시킨다. 죽은 것도 부활할 수 있으리라고 스스로를 일깨운다.(74쪽)






레베카 워커(미국 하와이 주 마우이)


이 창 너머 풍경을 3년 동안 봤다. 사각형 창틀 너머를 내다보는 마음은 희망과 절망으로 가득 찼으며, 닿고자 하는 영감으로 아찔했고 끊으려고 약동하는 욕망에 추월당했다. 나에게 글쓰기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가왔다가 멀어지기를 되풀이하는 그네의 줄을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기분에 상관없이 창 너머의 빛을 언제나 사랑해왔다. 고요함도 언제나 사랑해왔다. 손님을 기다리는 파수꾼, 충족의 약속을 향해 팔을 벌린 두 개의 빈 의자를 사랑해왔다. 바로 여기에서, 하나의 작은 마을로 가는 길에서, 태평양 한가운데 놓인 작은 바위에서 마음이 편해진다. 일출 직전의, 쏟아져 내리며 천둥과 번개를 몰고 오는, 찢고 스며드는, 매섭고 처절한 비를 사랑한다.
바로 이번 주, 이 집을 떠나게 되었다. 이제 창밖 풍경도 바뀔 것이다. 새로운 언어의 집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이 창에게 감사와 안도의 작별 인사를 건넨다. 삶의 다음 장을 위한 준비를 끝냈다. (110쪽)





다니엘 갈레라(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


사실 탁 트이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방해가 된다. 밖에 나가서 창문을 닫아야 할 것만 같다. 반면에 벽을 마주한 창은 갇힌 것 같아 더 나쁘다. 그래서 광장과 나무 몇 그루, 사람 그리고 소음이 있는 지금 이 정도가 딱 좋다. 교통 소음조차도 내 도시환경 및 생활과 연결되어 어느 정도 자극이 된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고 다른 여러 가지 일을 한다는 인식이 종종 글쓰기로 나를 모는 지속적인 고립을 깨고 고독을 달래준다. 나는 대체로 별 변화 없는 창밖 풍경을 볼 때마다 개와 새소리, 소녀가 연습하는 플루트 소리, 버스와 트럭의 굉음, 구급차의 사이렌, 바람과 비, 제정신이 아닌 사람과 노숙자의 고함, 시끄럽게 틀어놓은 음악과 늦은 시간의 주먹질, 때로 고요함, 길게 늘어진 고요함을 듣는다. 어떤 창문은 몽상을 위한 탈출구이지만 어떤 창문은 함께하는 친구다. (156쪽)




‘어떤 창문은 몽상을 위한 탈출구이지만 어떤 창문은 함께하는 친구다’라고, 다니엘 갈레라가 말했듯이 창문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작가를 비롯해 여러 예술가들에게 창문은 ‘창작으로 통하는 어떤 출구’ 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창문이 그런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갇혀있던 실내 공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 때가 많다. 그리고 열린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내다보게 되고, 우연히 맑은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나 도로 위 풍경, 거리의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러다가 가끔씩 생각에 잠기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풍경은 사람들의 시선을 이끌며 생각지도 못한 어떤 상념의 세계로 이끌기도 한다. 이런 순간은 예술가들에게는 창작의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는 여유로운 시간이 되기도 할 것이다.

 창은 바깥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공간이다. 그런 열린 공간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도 자연스럽게 열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매력은, 세계의 여러 다양한 곳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의 거주 공간의 창밖 풍경을 음미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풍경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시선까지 섬세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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