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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Mar 29. 2021

시와 산책/한정원/시간의 흐름

-외로울 땐 독서


 최근에 좋은 산문집 한 권과 만났다. 작가는 한정원. 처음 만나는 작가이다. 

 책의 두께는 얇지만 담긴 사고의 깊이는 두껍다.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하는 이야기들 속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가만히 귀 기울이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촉촉한 감성들이 봄날 새싹 돋듯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것 같았다. 





 이 산문집이 내게 주었던 잔잔한 즐거움을 이웃들과 함께하고 싶어, 간직하고 싶던 문장들을 몇 개만 옮겨본다. 


 눈은 흰색이라기보다 흰빛이다. 그 빛에는 내가 사랑하는 얼굴이 실려 있을 것만 같다. 아무리 멀어도, 다른 세상에 있어도, 그날만은 찾아와 창밖에서 나를 부르겠다는 약속 같다. 그 보이지 않는 약속이 두고두고 눈을 기다리게 한다. (14쪽)


 ㅡ눈에 대한 찬양이 눈부시다. 내게는 그 눈이, 그냥 눈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의 의미로 다가왔다. 한 때 내게도 그런 아름다운 눈 같은 사람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젠 녹아버린 눈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가슴 아프다. 그러나 누군들 가슴 한쪽 아린 추억 한 둘 쯤은 있지 않으리오.



 사랑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면 불행이 닥치는 순간 절망에 빠지게 된다.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동서문화사(2011)


 행복이 내가 가져야 하는 영혼의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토록 자주 절망한다.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피동적으로 얻어지고 잃는 게 행불행이라고 규정하고 말면, 영영 그 얽매임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 가슴에는 노래가 산다. 노래는 긍정적인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라기보다는, 필요하여 자꾸 불러들이는 사람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34쪽)


-작가는 시몬 베유의 ‘사랑’을 ‘행복’으로 바꾸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이든 행복이든, 우리는 종종 그것을 영혼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들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결정이라는 말은 적극적인 태도에서 나온다. 어떤 상황의 유·불리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의 중심을 잡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리 삶에 늘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한다면 그 노래는 부르는 사람의 몸에 늘 머물 것이다. 

결국 삶은 늘 결정이며, 선택이라는 것.



 에른스트 얀들의 시에 “낱말들이 네게 행하는 것이 아닌 네가 낱말에 행하는 것, 그것이 무언인가 된다”는 구절이 있다. ‘행복’이 우리에게 가하는 영향력에 휘둘리는 대신, 우리가 ‘행복’에 무언가를 행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무언가가 바로 망각이기를 바란다. 그 낱말은 죽은 조상에게 맡기고 그만 잊자고. 할 수 있다면 ‘불행’도 잊자고.
 기쁘고 슬플 것이나 다만 노래하자고.(35쪽)


- 추상적인 단어에 휘둘리지 말자는 뜻이 아닐까. 행복은 추상적으로 만들어 놓은 정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실천하는 데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 

 친구들과 만나서 즐겁게 얘기하거나, 산책하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이름 모를 꽃과 새들을 보고 감탄한다든가, 도서관 서가에서 멋진 책을 발견한다든가. 이렇게 매일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이 어쩌면 행복의 실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어는 말 그대로 돌멩이, 가시, 구름 같은 단어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얼굴이나 사건일 수도 있다. 그것은 아주 깊은 곳에 잠겨 있어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예민하고 집요하게 찾아 헤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어둠 속으로 첨벙 뛰어들어야 한다. (73쪽)


- 시어는, 작가의 말처럼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시어를 찾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 깨어 있는 정신으로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깨어있을 때에만 시어는 어렴풋하게나마 모습을 드러낼 것 같다. 나만의 시어를 찾기 위해서 매일 부지런히 눈 크게 뜨고 돌아다녀야 할 듯.




 강은 지나가지만 바다는 지나가고도 머문다. 바로 이렇게 변함없으면서도 덧없이 사랑해야 한다. 나는 바다와 결혼한다.

      -알베르 까뮈, 『결혼, 여름』, 책세상(1989)

 과묵한 강과 달리, 바다는 우선 떠들썩했다. 자꾸 내 앞으로 달려와 발목을 잡았다. 강이 나를 따돌리는 친구였다면, 바다는 내가 시큰둥해도 거듭 다가와 말을 거는 속없이 다정한 친구 같았다. (77쪽)


-바다와 같은 사랑, 바다와 같은 우정이 있을까. 바다처럼 지나가고도 머무는 사랑.

 불교의 색즉시공이 생각난다. 

바다, 그 한없이 넓은 가슴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겠지. 

사랑, 갈등, 증오까지도, 그 모든 것을!



제 내 마음이 말을 그친다

파도도 그치고

독수리들이 다시 날아간다

발톱이 피로 물든 채


 -울라브 하우게, 「이제 내 마음이 말을 그친다」,「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봄날의 책(2017)


 말을 잃은 적이 있다. 목소리를 갖고 있어도 말을 할 수 없었다. 말하고 싶은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내게서 말을 훔쳐간 것은 슬픔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되찾아올 힘이 내겐 없었다. (95쪽)


-내게서 아직 말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삶에 애착할 그 무언가가 있다는 뜻일까. 끊임없는 혼잣말은 사실 혼자임을 스스로 각인시키는 행위일 뿐인데... 말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인지 모른다.



 세상과의 결속에서 틈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나의 내면이 나의 존재와 끊어지지 않으려 분투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 영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계속 시도해보겠다는 의지 같은 것.
저녁은 그렇게, 시를 읽는 나와 함께 늙어간다.(125쪽)


-그럴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자기가 누구인지 영영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다만 살아있는 동안 계속 노력해야 할 뿐.

 시와 함께 늙어가는 아름다운 생!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울컥 일어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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