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이다혜 지음/위즈덤하우스
저자는 <씨네 21>에서 일하고 있고, CGV 씨네 라이브러리에서 진행한 글쓰기 특강들과 말과 활 아카데미에서의 글쓰기 특강, 그리고 몇몇 도서관, 기업체, 교육기관에서 다양한 글쓰기와 말하기 관련 강좌를 연 경력이 있다. 그녀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이 ‘이십여 년 간 경험한 글쓰기 시행착오의 기록이자 어렵게 발견한 방법론’이라고 했다. 그만큼 나름대로는 공을 들였다는 말이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는 책 제목 때문이어서 그런지, 왠지 글을 잘 쓰게 해 줄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은 예전에도 읽어 보았지만, 여전히 눈길을 끌었다. 내 글쓰기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그렇지만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고 나서 글이 좋아졌다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이런 책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고 다시 잡게 되는 이유는, 해결하기 힘든, 어떤 답답함이 있어서 그런 듯하다. 늘 그렇듯이 이런 책들은 읽는 당시에는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지만, 책을 덮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었다.
책 내용이 내 정신에 스미어 들어서 나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데, 나 자신의 경험이 아니어서 그런지 잘 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가 그렇듯이.
나는 전문 작가가 되기 위해서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는 내 삶을 좀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싶어서이고, 내 삶의 기록을 남긴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경험한 후에, 글로 기록을 남겨두지 않으면 그 일은 그냥 스쳐 지나가버려서 기억의 저장고에 남아 있지 않고 증발해버린다. 그렇지만 글로 기록을 해두면 나중에라도 그때의 느낌이나 생각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 그 일을 되새기며 새로운 생각도 하게 된다. 기록은 이렇게 이중의 경험을 하게 해주는 멋진 방법이다.
기록의 가치는, 책을 읽고 나서 그냥 덮어버리는 것과, 그 책에 대해서 서평을 쓰는 것을 비교해보면,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다시 책을 찾아보아야 하고, 또 인상 깊었던 글귀에서는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서평 쓰기가 책을 더 꼼꼼하게 읽게 하거나, 더 깊이 있게 책에 대해서 사유하게 하듯이, 어떤 일을 기록할 때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그 일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고, 그런 행위를 통해서 그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의미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기록하는 행위는 삶을 더 명징하게 살게 해 준다. 즉 현재의 삶에 집중하게 한다. 고칠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게 하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덜 불안하게 해 준다. 마음의 중심을 잡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 그러므로 기록하는 행위는 삶을 더 진지하고 충만한 것으로 만든다. 여기에 기록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일이나, 일상의 경험에 대해 기록을 남기는 일은, 서로 다른 일이 아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떤 경험을 그냥 흘러 보내지 않고, 그 경험을 다시 붙잡고 되새김질하며 그것을 기억의 창고에 보관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반인들의 목적과는 좀 다른 듯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당위성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글의 첫 독자다. 이것은 많은 작가들이 글을 쓰는 멋진 이유가 된다. 내가 읽고 싶은 글이 세상에 없어서 내가 쓴다. 남이 읽어주는 것은 그다음의 행복이다. 일단 쓰는 내가 느끼는 즐거움이 존재한다. 쓰고자 하는 대로 써지지 않는 고통이 있고, 그래서 퍼붓는 노력이 있고, 더디지만 더 나은 형태의 결과물을 만들어간다. 남이 알기 전에, 그 매일에 충실한 나 자신이 먼저 안다. 나는 내 글의 첫 독자다.(133쪽)
저자가 글을 쓰는 이유와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른 것 같다. 이처럼 각자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르지만, 글쓰기에 어떤 이점利點이 있어서 쓸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할 때에는, 그 행위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떤 이점利點이 있기 때문에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글을 잘 쓰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했지만, 내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 것에 의미를 둔다.
내 경험으로는, 글을 잘 쓰기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계속 꾸준히 쓰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