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작품 『사건 L’événement』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이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의 프랑스다. 그때만 해도 프랑스는 우리가 생각하던 도덕이 느슨한 자유분방한 나라가 아니었고, 또 여자들의 입지도 동양 여자들의 것과 비교해서 크게 나은 점이 없는 듯해서 놀랐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 ‘안’은 남자와 하룻밤을 자고 임신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안은, 임신했다는 의사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당시, 프랑스는 낙태가 법적으로 엄격하게 금지된 상태였다. 안은 아이를 낳으면 미혼모로서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고, 그녀의 인생은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그녀는 절망했다.
안은 임신 사실을 부모님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임신 후 상당 기간이 지난 후에야 힘들게 얘기를 꺼냈다. 그러나 그녀의 고백을 들은 친구들은 도움은커녕 그때부터 그녀와 노골적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임신이 마치 전염병이라도 된다는 듯이.
안은 혼자 고민하면서 낙태하려고 고통을 참으며 여러 가지 끔찍한 방법을 시도해 보지만 다 실패한다.
안은 계속 고민하다가 아는 남자 친구에게 임신 사실을 얘기하면서 도와달라고 했다. 그는 펄쩍 뛰면서 거절했지만 나중에 자기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 그 친구는 낙태를 불법적으로 하는 사람을 안에게 소개해 주었다. 안은 자기가 가진 물건들과 책을 싸게 팔아 낙태비용을 마련해서 불법 시술소로 찾아가는데 그 사람과의 접촉은 아주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안은 자신이 가진 물건을 팔아서 마련한 돈으로 어렵사리 수술을 받았지만 낙태는 또 실패했다.
안은 다시 불법 시술소로 찾아간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쓴 방법으로 한 번 더 낙태를 시도했다. 기숙사로 돌아온 안은 엄청난 육체적 고통으로 비명을 지른다. 옆방에 있던 친구가 그 소리를 듣고 놀라서 달려왔고, 그녀가 병원에 다급하게 연락했다. 안은 병원에서 ‘유산’으로 진단을 받았다.
학교로 돌아온 안은 교수에게 찾아가서 다시 공부하겠다고 말하고 시험을 준비한다. 시험을 앞둔 그녀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결연해 보였다. 그녀는 이제 독립적인 자신만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것이다.
임신은 여자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상대인 남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여자와 남자, 두 사람이 벌인 일의 결과인 임신에 대해서 남자들은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반응한다. 여자는 남자의 무책임한 태도를 나무라고 싶지만, 임신은 여자의 몸속에서 일어난 ‘사건’ 일 뿐이다. 남자들은 자신의 몸이 아니니 외면하고 달아날 수가 있지만, 여자는 자신의 몸속에 ‘사건’을 품고 있으니, 달아날 수 없고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져 있다.
레베카 솔닛은 그녀의 책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통해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었다. ‘mansplain’은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를 합친 단어이다. 남자들은 거의 무의식적인 남존여비 사상으로 여자들을 자기보다 무지한 존재로 인식하고, 늘 여자들을 가르치려고 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말이다.
평소에는 늘 여자보다 잘났기 때문에 여자들을 가르치려고 하던 남자들이, 원치 않은 여자의 임신 앞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모르는 척하거나 달아나려고 한다. 교통사고를 내놓고 뺑소니치는 운전자들의 태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남자들의 이런 이중적인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오래전부터 무력으로 세상을 정복해온 남자들은 그들 중심의 사회질서를 만들었고 그것은 확고한 사회제도로 자리 잡았다.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온 이런 사회제도는 남자들에게 많은 면죄부를 주었고,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약자’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다.
내게, 이 영화는 낙태 그 자체에 대한 도덕성의 문제보다는 인간의 이기심과 책임, 고통, 그리고 삶의 태도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하게 했다.
한 인간이 고통의 늪에 빠졌을 때 그 고통은 결코 타인과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그 늪에서 빠져나와야만 하는가?
근원적으로는 ‘그렇다’인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통이 결코 무의미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안은 절대 빠져나올 수 없어 보이던 고통스러운 문제에 봉착했다. 그러나 그녀는 용기 있게 결단을 내리고 자신의 인생을 선택한다. 그녀는 지난한 고통의 여정을 통과하면서 바위처럼 단단한 주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험난한 삶의 여정이 펼쳐질지라도, 그녀는 크게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헤쳐 나갈 것이다. 안의 모델이 된 작가인 아니 에르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삶의 문제나 고통 앞에서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삶의 방향성은 결정된다. 의지는 인간이 가진 고귀한 특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