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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제사 크리스핀/북인더갭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저자는 서문 첫 문장에서, 독자들에게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여성이 인간이고 인간답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남성과 동등한 권리와 자유를 마땅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페미니스트가 맞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동안 페미니스트들이 이렇게 단순하고 자명한 페미니즘의 사전적 정의를 실현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는 듯,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부정은, 사실은 올바른 방향으로서의 페미니스트에 대한 강한 긍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페미니즘 운동이 최초로 일어났을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페미니즘은 언제나 소규모의 활동가, 급진주의자, 괴짜들로 이루어진 비주류 문화였다. 이들은 온 힘을 다해 사회를 자기네 쪽으로 끌어왔다. 울타리에 몸을 묶고 단식투쟁을 하고 창문을 깨트리고 폭탄을 던지며 여성 참정권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은 결코 절대적 여성 다수가 아니었다. 절대적 여성 다수는 신경 쓰지 않거나 아니면 그 사람들이 그렇게 난리를 치지 않기를 바랐다. (19쪽)


기존 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최초에 제기한 자들은 늘 소수였고, 그들은 자기들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싸웠다. 그러나 절대다수는 방관자였다. 그것은 지난 과거의 역사에서 일어났던 거의 모든 사건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 진실이었다. 물론 그 혁명의 열매는 다수가 누렸다.


저자는 2세대 페미니즘 운동을 비판했다. 그 운동에서 여성 다수는 그저 더 많은 독립이 보장된 안락한 (결혼) 생활을 원했을 뿐이라고 했다.

2세대 페미니즘 운동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페미니즘 운동으로 생식과 사적인 영역에서의 여성해방은 물론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며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급진적인 운동을 펼쳤지만, 인종을 뛰어넘지 못하고 성소수자를 배제시키는 한계를 드러내며 쇠퇴했다.


저자는 요즘 유행하는 보편적 페미니즘의 문제점을 이렇게 짚어냈다.


페미니즘이 사회에 의문을 제시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며 자신의 삶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정치체제에서 방향을 틀어 자기 역량 강화와 자기 계발의 방편으로 바뀌는 순간, 그것은 보편적 페미니즘이 된다. 이제 누가 무엇을 하든 페미니스트라는 이름표를 달 수 있다. (32쪽)

그러면서 그녀는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들이 있다고 했다.


첫째, 페미니즘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는가? 당신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 모든 위치의 모든 여성과 남성을 위해? 다음, 전통적으로 남성적이라 여겨졌던 영역에 여성의 자리를 만든 만큼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이었던 곳에도 남성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성을 위한 더 나은 세계를 원한다면, 페미니즘의 현재 목표와 사상이 그러한 세계를 만들 가능성은 있는가?(52쪽)



저자는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는 가부장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부장제는 한 여성의 개인적 자유보다 더 중요한 문제다. 가부장제는 우리 대 그들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다수를 통제와 억압으로 눌러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는 시스템이다. 여성 혐오라는 낱말은 인종차별과 호모포비아 동성애 혐오 나 공적 영역에서 만연한 빈곤층을 향한 명백한 공포와 증오를 지칭하기 위해 우리가 계속 만들어낼 용어처럼 가부장제의 논리가 확장된 결과다. 누군가를 이용하고, 누군가를 착취할 만한 자원으로 간주하려면 그들을 비인간화하는 편이 유용하다. (78~79쪽)


그리고 저자는 ‘시스템’에 대해 흥미로운 정의를 내렸다.


참고로 “시스템”이라 할 때 내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가부장제” 혹은 “자본주의”라는 단어로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복잡한 세계 전체다. 이 시스템은 일부는 포용하고 일부는 배제하도록, 일부는 혜택을 주고 일부는 착취하도록 조작돼 있기에 악하다. 자신이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싸우는 행위로 당신은 시스템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그저 시스템 내부에서 혜택을 받는 이들의 반열에 오를 뿐이다. 당신 또한 배제하고 착취한다. 즉, 여성인 당신도 역시 가부장제다.


우리가 우리의 주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면, 내부로의 접근이 허락된다고 가정할 때 우리가 어떤 종류의 세상에 참여하게 될지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는 일이 가능하다... 단순히 말해, 우리가 일단 남성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시스템의 일원이 되어 혜택을 받게 된 후에는, 집단 차원에서 다음으로 다치게 될 대상이 누구인지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공간을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모두에게 의무를 지닌다. 그리고 이 의무는 우리 자신의 소위 정당한 요구나 권리보다 앞선다.(84~85쪽)


여성에 대한 교육의 기회가 확장되어 여성으로서 시스템에 접근이 예전보다 용이해졌다. 그러나 이런 접근을 한 여성들이 이런 시스템을 와해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달콤함에 빠져 힘 있는 여성들은 약자의 위치에 있는 소수자 여성들을 위해 일하지 않는 것이다. 권력자의 주인공만 바뀌었을 뿐, 시스템에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진정한 페미니즘 운동을 위해서는 시스템 밖의 생활을 추구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당신이 돈보다는 자유를 선택하고, 연민과 정직, 신념의 가치에 따르는 삶을 살기로 작정한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혐오할 것이다. 당신이 그러한 부분에서의 자신들의 결함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시스템 밖의 삶은 외롭다. 그래도 우리는 이곳에 있어줄 당신이 필요하다.(86~87쪽)


저자는 페미니즘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렇게 제시했다.


남성과 여성이 가치와 힘에서 동등하다는, 페미니즘의 동력이 되는 철학이야말로 함께 세상을 새롭게 상상하도록 해줄 것이다.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말이다. 남성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고 참여해야만 한다... 한 집단이 다른 모두를 대변하여 세상을 만든다는 생각은 떨쳐버리고 함께 협동과 형제애의 세상을 만들어나가자.(159~160쪽)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며, 사회가 어떤 가치를 높게 평가해야 하는지 등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185쪽)


우리의 가부장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소비사회를 해체하려면 우리 안의 , 그리고 다른 이들 속의 이러한 믿음체계를 공격해야 한다. 돈과 가치를 동일시하는 서로의 이야기를 멈추어야 한다. 우리는 가치가 사랑과 돌봄으로 표현되는 세상을 상상해야만 한다. (186쪽)


우리는 상상력을 되찾아야 한다. 우리는 가부장적 상상력에 오염되어 제한을 받았다. 우리는 제한된 그만큼만 보았을 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조 너머를 보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삶에, 가정에, 일에 영혼에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은 물론, 우리의 세계관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다르게 상상해야만 한다. 이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다.(187쪽)


이 책을 통해 현재 페미니즘의 대략적인 경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미국의 페미니즘이다. 한국의 페미니즘이 미국의 페미니즘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의 페미니즘도 어느 정도 그런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은 듯하다.


저자가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여성이 이 사회에서 권력을 잡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평등한 권리를 갖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데에 있다.

페미니즘 운동은 이런 확고한 철학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만 바른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에 관한 근원적인 성찰을 하게 해 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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